[광화문]우리 CEO님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경제부장 | 2008.05.30 04:26
외교와 통상은 양립이 힘든 부분이다. 한 쪽은 친선과 우호를 말해야하고 다른 쪽은 얼굴을 붉히더라도 자신의 이익은 챙겨야 한다. 속된 말로 `불알’ 친구와 사업상 친구간에 터놓을 수 있는 깊이와 폭은 다를 수밖에 없다.

1998년 외무부와 상공부의 통상기능을 외교통상부로 묶어 놓을 때부터 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가까웠던 한 외교관은 “자신이 창녀같다”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파티석상에서는 온갖 교태 섞인 미소를 보이다가 뒤돌아 서 갈 때는 정색하며 술값이 빼꼭히 적힌 긴 계산서를 내밀어야 할 신세라는 한탄이었다. 때문에 외교부내에서 통상분야는 아직도 제 자리를 못 찾고 떠도는 ‘섬’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모델의 원조는 미국이다. 냉전 종식이후 90년대초 미국이 채택한 이른바 '상업 외교(Commercial Diplomacy)'가 그 오리지널이다. 소련 붕괴로 팍스아메리카나를 연 미국의 새로운 '세계 경영 전략'이었다.
부연하면 미 기업이 외국 시장을 개방시켜 국부를 축적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미국의 이상을 전파하도록 정부가 측면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상무부내에는 국방부 '워룸(War Room)'개념의 전략실이 생기고 무역대표부(USTR)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대통령의 외국방문시 기업인이 대거 동행하는 '세일즈 외교'도 등장했다. 맞상대 KGB가 없어진 CIA가 자국 기업 기밀을 보호한다고 산업스파이 색출에 열올리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부터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 정책이 깊어지던 클린턴 행정부 당시부터 상업적 이익을 앞세운 미국의 행태에 세계 곳곳에서는 '반미' 의 기치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관심권에서 벗어난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은 핵확산으로 자생력을 가지려 했고 중동에서는 힘의 균열도 생겨났다.

우익 네오콘의 등장은 미 상업외교정책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급기야 '9.11테러'를 부르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극에 달했다. 돈과 국익만을 내세운 정책앞에 진정한 우방마저 모두 잃었다는 자성이 들끓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고유가, 자원 무기화 등 그 폐해를 고스란히 받고있다.

이 가운데 새 정부는 자원외교란 말을 들고 나왔다. 왜 미국의 실패한 정책을 다시 거론할까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및 상품가 급등이라는 대외적 환경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MB식 의지의 표명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를 자임한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며 이미 실패는 예견돼 있지 않았나 싶다. 외교와 통상은 양립이 힘든 때문이다. 한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까지 초청받아가서 '노(no)'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쓰라린 결과는 자원외교의 첫 번째 성과물인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가 이미 말해준다.
협상중 CEO가 할 일은 다 된 합의서를 꼼꼼히 살핀후 서명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자원외교에 적임자라던 총리에게 그 역할은 넘겨야 한다. 그리고 화급한 민생고 해결에 전념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CEO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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