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서라벌찰보리빵’ 가게 앞에 가면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희고 고운 볼과 꽃잎 같은 입술의 어머니들이 만든 향기다.
10여명의 직원이 모두 50대 같은 외모이지만 실은 60대 중반 이상 70대 어르신들이다. 무슨 힘이 할머니들을 어머니의 '동안'으로 돌려놨을까. 뭔가 남다른 묘약이라도 있는 걸까.
26일, 경주 황오동 서라벌찰보리빵 가게에 가서 다짜고짜 부엌부터 쳐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매일우유 1등급 생유, 대두식품의 ‘고운앙금’ 팥소가 단정하게 놓여 있다.
찬장을 봤다. 백화수복, 해표 식용유, 코시스 바닐라에센스가 얹혀 있다. 씽크대 서랍 안엔 서강유업의 낙우밀 전지분유가 들어 있다. 찬장 옆으로 신경주농협의 찰보리분말 십여포대가 쌓여 있었다.
“이 근처 휴경지 이용해서 농협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거라예. 수입산은 절대 안 써요.”
신선한 계란, 무농약 찰보리분말,
1등급 우유.
김춘선(64) 할머니였다. 그는 2005년 서라벌찰보리빵이 개업할 때부터 일한 창업 멤버다.
“우리 찰보리빵은 밀가루를 전혀 안 써요. 100% 찰보리를 쓰니까 영양이 풍부해요. 아침 대신 먹어도 좋고요. 버터를 안 써서 트랜스 지방도 없어요. 방부제도 안 써요.계란도 한 판에 3800원짜리, 좋은 것 신선한 걸 써요.”
김 할머니가 양손에 계란을 들고 톡 치니 탱글한 노른자, 말간 흰자가 반죽그릇으로 떨어졌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쩐지 낯익다. 맞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당신의 부엌에 서서 짓는 표정이다.
점포 쪽에서 나직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갑내기 친구인 안귀순, 최흥수(71)할머니가 빵 상자를 접으며 나누는 대화 소리였다.
슬쩍 곁으로 다가가 상자를 보는 척 딴청을 부리면서 엿들었다. “십년 전엔가 아무개한테 들은 얘긴데 어떤 양장점에선 블라우스가 100만원이나 한다더라”는 내용이었다. 부엌에서 김 할머니가 나와 불쑥 끼어들었다.
“에이, 블라우스 하나에 100만원짜리가 어딧능교.”
“그런가. 그게 높은 사람들 세계라 카던데.”
마실 나온 처자들 같이 호호깔깔 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경건해졌다. 돌아보니, 이상운(30) 간사가 빵 굽는 기계에 반죽을 담고 있었다.
신라문화원 경주시니어클럽에서 파견된 그는 이 사업을 위해 경주현대호텔과 경주서라벌대 호텔조리학과 전문가들로부터 제빵기술을 전수 받았다.
김 할머니가 식용유를 살짝 바른 열판 위로 반죽을 동그랗게 붓고 뚜껑을 닫았다. 침묵이 점포에 흘렀다. 2분 후, 알람이 ‘삐삐’ 울렸다. 김 할머니가 나무뒤집개를 드니 순식간에 빵반죽들이 홀랑홀랑 뒤집혔다.
다시 2분 후, 갈색빛으로 노릇노릇 구워진 보리빵들이 쟁반에 담겨 나왔다. 달콤한 향에 다시 입안에 침이 고였다.
황 할머니가 빵을 식히고,
안 할머니와 최 할머니가 팥소를
넣고 이 간사가 빵을 팔고 있다. ">↑서라벌찰보리빵 일하는 풍경.
맨위부터 김 할머니가 빵을 굽고,
황 할머니가 빵을 식히고,
안 할머니와 최 할머니가 팥소를
넣고 이 간사가 빵을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