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실용과 독단 사이…" 어디로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 2008.05.28 14:48

증시·재계서 바라본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

이명박 정부가 다음달 3일이면 출범 100일째를 맞는다. 증시와 재계에서는 '이명박호(號)'가 '대한민국 선단'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어주리라 믿고 있는데, 출범 100일만에 실망의 빛이 완연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실용주의'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의 구호는 실제 성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말 뿐이어서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목적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된다.

증시와 재계에서 이명박 정부가 펼친 100일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개진하고 있는 반응을 취합해 본다. 인구에 회자되는 의견이라 해서 객관적인 평가라 볼 수 없지만, 그 속에 담긴 비판의 뜻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원칙없는 실용은 '고집스런 원칙주의'보다 무섭다

A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노무현 전 정부와 이명박 현 정부의 공과를 논하면서 "실용주의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라며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을 멀리하고, 지금 이 순간 요구되는 과제를 적시에 파악해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갈 때 그 뜻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실용주의는 무엇보다 큰 그릇, 다시말해 각 실용책들을 묶어줄 수 있는 비전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보면 그 큰 틀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747 공약(연평균 7% 경제성장, 10년내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10년 내 선진 7개국 진입)은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쇠고기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고, 국민을 설득해 끌고 나갈 리더십의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강대 한 교수는 "실용주의는 서양에서는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으로, 동양에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며 "하지만 프래그머티즘은 형이상학적 유럽 철학과 사상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에서 나온 것이고, 실사구시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그 궁국적인 이치를 밝혀 생활에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본질보다는 형태와 다양성에 주목하는 프래그머티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며 "목적과 본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실사구시로 바꿔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의 지나친 원칙주의에 식상한 국민들이 실용주의로 대변되는 '비전'을 선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멀리 나간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원칙을 지키되 현실에 맞게 유연하고 경쾌한 행보를 기대했지만, 공유하는 비전 없이 중구난방식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는 경고다.

#2.독단과 실용 사이…

이명박 대통령은 굵직한 사안은 물론 이슈화되는 세부항목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다. '실용주의의 전도자이자 대변인'으로서 직접 나서 해법을 제시해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대통령이 의견을 내놓고 시행됐던 'MB 물가지수'의 성과는 기대 이하다.


시장은 물론 관계에서도 이에 대해 처음부터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잡을 수 있을까', "정부에서 직접 나서 특정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B 증권사 임원은 "실용주의는 전문가를 요구하는데, 대통령이 자신을 '최고의 전문가'로 자평하면서 사안을 처리하면서 일이 꼬이고 있는 것 아니냐"며 "자신과 통치철학을 공유하면서 각 부문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게 최고 통치자의 기본 임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 이거 해 봤어?"로 대변되는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자칫 모든 것을 자신이 도맡아 처리하겠다는 '슈퍼맨 컴플렉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한정된 실용주의'에 빠진다면 원치 않았지만 독단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3.물을 잘못 다스리면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

무릇 동양에서는 '물을 다스려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치수치세(治水治世) 사상이 오랫동안 내려오고 있다.

중국 상고시대에 요임금에 이어 나라를 선양받았던 순임금은 13년 동안 치수에 성공한 우에게 천자의 지위를 넘겨줬다. 이 우왕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의 첫번째 임금이다.

고구려 정복을 꿈꾸었던 수양제는 대운하 사업 때문에 국가 재정을 탕진했고, 민심을 얻지 못해 결국 천하를 잃고 자신도 요절하고 말았다.

우왕과 수양제는 둘다 물을 다스려 천하를 통일하고,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왕은 중국 명군 중의 명군인 순임금과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10여년이 넘는 동안 자신의 몸이 치명적으로 상할 만큼 전심전력했다. 반면 수양제는 절대적인 전제황권을 바탕으로 '졸속 대운하'를 건설해 숱한 인명을 앗아갔고, 고구려 정벌이란 야욕을 버리지 못해 자멸하고 만다.

증시와 재계는 굳이 이같은 고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건설에 대해 보다 냉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왜 대운하 건설이 필요한지, 대운하 건설로 혹 국토파괴라는 대재앙이 정말 나타나지 않을지 등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국민적 공감대와 요구가 형성되기를 기다려 달라는 얘기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이 될 대운하 건설을 "반드시 내 손으로 처리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묶인 갈등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이란 비판이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인위적인 야욕을 드러낸 지도자는 온존히 그 명성을 보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악명'을 남기고 만다는 교훈을 새겨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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