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CEO 꿈도 못꾸는 공기업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 2008.05.23 09:45
수출입은행의 차기 행장 인선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8월 이 은행 노조가 재정경제부와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창립 30년 동안 한 번도 자행 출신 은행장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게 요지였다. 전문성을 갖춘 자행 출신 인사도 많은 만큼 이번에는 내부인사를 발탁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는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관료 출신이 다시 수장을 맡았다.

수출입은행은 설립목적만 보면 민간 금융회사라기보다 공공기관에 가깝다. 외환은행의 수출입 금융업무를 넘겨받아 76년 세워진 수출입은행은 '수출입과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금융을 공여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대외경제협력을 촉진한다'는 게 법상 부과된 최우선과제다.

이 때문인지 은행장의 제청기관(현재 기획재정부)은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당연시해왔고, 창립 이래 내부에서 승진한 경우는 단 1차례도 없었다. 정부가 수출입은행의 공적인 기능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면 '낙하산'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새 정부는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물갈이'를 추진하면서 임기가 한참 남은 수출입은행장도 교체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히 후임 행장을 종전까지의 내부 추천 대신 공모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에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경영의 책임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에 경영마인드가 있는 민간 전문가를 발탁하겠다는 '거듭된' 의지까지 감안한다면 이번에 민간 출신이 수장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공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CEO 자리를 유능한 민간 출신에게 넘기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톱다운' 방식의 개혁은 짧은 시간내 효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민간 출신보다 경영능력이 뛰어난 관료라면 CEO 후보군에서 제외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외부수혈'이 조직의 DNA까지 바꾸려면 직원들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직원들에게 이른바 'CEO 마인드'를 키워주는 것도 절실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정부와 공공기관에 'CEO 마인드'를 독려하고 있다. 올 3월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군도 '경영마인드'를 갖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 직원들의 'CEO 마인드'를 제고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다. 'CEO 마인드'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겠지만 길러지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일종의 '머슴' 근성 역시 마찬가지다.

입사할 때부터 최고 지위에 오를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영마인드를 주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상당수 공기업에서 자율경영 분위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채 직원들이 주무부처 눈치부터 보는 데 익숙해지는 것도 기관장 선임 과정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물론 CEO에 대해 내부 승진이 이뤄진다고 해서 곧바로 직원들의 경영마인드가 제고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장 일괄 교체가 단순히 정권교체에 따른 '보은인사' 수순이 아니라 공기업의 체질을 뜯어고치기 위한 차원이 맞다면 이제는 공기업 직원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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