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ㆍ환경물질 규제는 사후약방문
정부는 생산가 부담 줄이기 급급...사고 땐 강제회수도 못해
한살배기 아기의 엄마인 송혜경(31·직장인) 씨는 플라스틱 젖병 대신 유리젖병을 쓴다. 체내에 흡수되면 마치 호르몬처럼 생물체 내의 각종 신진대사를 교란시키는 '내분비계 장애물질', 일명 '환경호르몬'이 걱정돼서다.
기저귀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에서 본드 냄새가 나는 게 맘에 걸려 순면 기저귀를 구입해서 쓴다. 그나마도 피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형광물질이 발견됐다는 제품은 피한다.
아기 입가의 침을 닦을 때는 물티슈 대신 삶은 손수건을 쓴다. 물론 잔류농약 속 중금속이 걱정돼 모 유통업체 매장에서 유기농 식품도 사 먹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포털 사이트 카페에서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내 아이에게 안전한 것만 주겠노라'는 다짐을 지키는 데 갈수록 큰 어려움을 느낀다.
"위험한 제품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살아야겠다고 맘 먹었어요. 이제 아이용품에서 중금속 검출됐다는 뉴스에는 무덤덤할 정도에요."
◇발암물질 사용량 4년만에 133% 증가=국내 제품의 화학물질과 유해물질 사용량이 나날이 늘어나니 송 씨가 자포자기 심정에 빠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2억8740만톤 정도이던 국내 화학물질 유통량은 2006년에 4억1790만톤으로 45.4% 늘었다. 같은 기간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2만1513종에서 2만5479종으로 3966종, 18.4% 증가했다. 매년 약 1000종씩 늘어난 셈이다.
유해물질 사용량 역시 늘어났다. 심지어 벤젠 등 1급 발암물질 사용량은 1700만톤으로, 4년 동안 133% 급증했다. 프탈레이트·비스페놀(BSP) 등 환경호르몬 사용량은 37만8000톤으로, 22.7% 증가했다.
유해물질, 화학물질의 국내 사용이 크게 늘었지만 정부는 사후 관리만 하고 있다. 지식경제부(구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과 환경부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하 품공법)' 등 관계법에 따라 유해물질이 검출된 제품만 규제한다.
지난 18일 환경부는 어린이용품의 유해물질 사용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4월부터 8개월간 젖병·인형·장신구 등 17개 제품군의 106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환경호르몬은 79개, 74.5%에서 검출됐다.
납은 15개, 14.2%의 제품에서 발견됐다. 중금속이 검출된 어린이용품은 27개로 25.5%에 이르렀다.
우리 아이들이 쓰는 물건 가운데 4개 중 3개에 환경호르몬이, 4개 중 1개에 중금속이 들어 있는데도 소비자는 그것이 어느 제품에 사용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부가 제품명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 등 소비자가 나섰다. 소시모는 3년 동안 수차례 제품 내 유해물질을 적발해 제품 실명을 공개했다.
이들은 지난해엔 타르성분이 들어간 색소와 이산화황이 들어간 포도·망고 등 일부 건과일 제품을 적발했다. 일부 식용유에선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을 발견했다.
2006년엔 일부 음료 병뚜껑의 음료 접촉 부분에서 프탈레이트계 환경호르몬인 DIDP가, 2005년엔 크레파스·물감 등 어린이용 미술교재에서 납·바륨 등 중금속과 환경호르몬이 나왔다.
일부 물티슈와 아동복·청바지에서도 포름알데히드 등 자극성·발암성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놀이방 매트 중엔 절반에 이르는 제품에서 프탈레이트계 환경호르몬이 발견됐다.
◇유명무실한 유해물질 관리= 정부는 지난 2006년, 3월 소비자원 등 10개 소비자단체가 유해물질 피해사례를 매월 종합해 신고하면 환경부가 위해성을 판단한 후 해당 물질의 취급을 제한·금지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취급을 제한 받은 제품은 없다.
한 예가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고무장갑이다. 소시모가 일부 제품을 고발한 후 기술표준원은 ‘고무장갑을 식품에 닿지 않도록 하라’는 표시문구를 제품에 넣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제조업자에게 유해물질 사용금지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가 ‘주의해서 쓰도록’ 경고문구를 붙이기만 하겠다는 말이다.
그나마도 아직 개정되지 않았다. 소시모가 계속 문제제기한 이후에야 조리용·설거지용 고무장갑의 색깔을 구분해 제조하도록 했을 뿐이다.
문은숙 소시모 사무처장은 "조리용·설거지용 고무장갑을 따로 쓰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 지 의문"이라며 "현재 유해물질 관리제도는 사용자 안전보다 생산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운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만영 친환경상품진흥원 센터장은 "현행대로라면 유해물질 규제를 강제할 방안이 없고 유해물질 사고가 발생해도 강제로 회수할 수 있는 조치도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르웨이나 유럽연합(EU)처럼, 제품 중심 규제가 아니라 물질 중심 규제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는 비소·납 등 중금속과 프탈레이트류 환경호르몬 등 18개 물질이 제품에 기준치 이상 함유될 수 없도록 하는 '소비자제품내 유해물질 사용금지법'을 올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EU도 지난 2006년부터 중금속과 난연제 등 6대 유해물질의 사용을 제한하는 '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EU는 46종의 물질을 제한 대상 유해물질로 새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은숙 소시모 사무처장은 "유해물질 관리는 물질 중심규제와 제품 중심규제가 서로 보완하는 구조로 운용돼야 하는데 지금은 제품 중심규제에 너무 얽매인 꼴"이라며 "사용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가 현재로서는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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