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외채 문제, 정말 심각한가

머니투데이 임대환 기자 | 2008.05.21 17:06

시장 참가자들 "심각하지 않다"… 정부의 환율 올리기 조치 의혹도

최근 급증하고 있는 단기외채 문제가 정말 심각한 것인지를 두고 평가가 분분하다. 기획재정부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원, 시장 참가자들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던 얘기를 다시 꺼내 든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보내고 있다.

◇얼마나 늘었나=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단기외채 잔액은 지난해말 현재 1587억4700만달러로 2006년보다 450억달러 가량 증가했다.

단기외채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97년말 637억5700만달러에서 2001년 402억9300만달러까지 줄었다가 2004년 563억4800만달러, 2005년 659억1100만달러로 계속 증가해 왔다. 2006년부터는 규모도 1000억달러 이상으로 급격히 커졌다.

전체 대외채무 역시 97년 1742억3100만달러에서 2005년 1878억8200만달러, 2006년 2600억6100만달러, 2007년 3806억6500만달러로 증가했다.

◇왜 늘었나=조선업체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물환 매도를 한 것이 컸다. 이 때문에 달러가 부족해진 금융기관들이 단기차입이나 스와프 거래를 늘리면서 단기외채가 늘어나게 됐다는 분석이다. 외국계은행들이 내외금리차를 이용, 금리차익을 노리는 재정거래를 늘린 것도 한 원인이 됐다. 해외펀드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달러가 필요해진 것도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인가=최근의 단기외채 급증은 외환위기 당시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단기외채의 갑작스런 증가는 외환시장의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은 역시 모니터링은 필요하지만 심각하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실제 2006년과 2007년 단기외채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대외채무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43.7%에서 지난해에는 41.7%로 줄었다. 비록 지난 97년(36.5%)보다 비중이 커지기는 했지만 2003년 이후 계속돼 오던 증가세가 꺾였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단기외채 문제는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던 문제로 갑자기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며 "이미 지난해부터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 창구 지도 등 관리를 해 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분석도 재정부와는 시각차가 느껴진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운용을 하면서 자금의 기간이 불일치하는 우리나라만의 문제였다"며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자금이 단기화돼 있는 상태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견해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화차입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달금리의 문제지 돈이 없어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며 "과거처럼 단기부채 압박이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 의도는=그렇다면 정부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 단기외채 문제를 이 시점에서 왜 꺼내든 것일까?

시장에서는 환율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단기외채를 억제할 경우 달러공급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고 이는 달러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환율을 끌어 올리게 된다.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많은 상황에서 단기외채 억제 발언은 간접적으로 환율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단기외채 규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환율은 1052원에서 1057원선까지 단숨이 오르기도 했다.

조만간 순채무국으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이 정부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06년 1000억달러가 넘던 대외 순채권이 지난해 350억달러로 급감, 순채무국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을 금융기관들의 단기외채 탓으로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예금은행들의 단기외채 차입은 지난 1월 16억8870만달러에서 2월 44억7560만달러, 3월 58억2810만달러로 계속 증가해 왔다.

◇시장자율에 맡겨야=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시장 참가자들은 시장 스스로 해결될 수 있도록 놔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장은 관리대상이 아니다"라며 "단기외채 문제는 금융시장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자체적으로 호흡할 수 있게 어느정도 수준에서는 놔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정부가 자꾸 말을 바꿔 시장을 호도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면 일부 수출기업들은 좋겠지만 결국 물가상승이 나타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제 전체를 봐야지 변수 하나만을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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