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 운용실적 부진 '법 때문에…'

더벨 현상경 기자 | 2008.05.16 19:17

[이슈리포트]③각종 의무예탁으로 운용제한...대부분 소액계좌로 자금회전기간 1년 미만

이 기사는 05월14일(09:5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우정사업본부의 낮은 운용수익률은 투자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에서 비롯된다.
자금조달에서 비용지출, 투자대상 확정, 수익배분 등 자산운용의 A부터 Z까지가 관련법령에 일일이 명시돼 있다.

'정부를 믿고 서민들이 맡긴 자금에서 손실이 안나야 한다' 는 게 이런 제한을 둔 이유다. 하지만 '리스크 제로'를 추구하다보니 틀에서 벗어난 투자가 어렵고 이 때문에 수익률도 바닥을 맴돌고 있다.

공자금ㆍ금융사 예탁 대부분...대출운용도 막혀

우정사업본부의 예금자금은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 18조에 따라 6가지로 대상이 한정돼 있다. '금융기관 예탁', '재정자금 예탁', '일부 유가증권 매입', '자금중개회사를 통한 금융기관 대여', '금융상품 지수 선물거래' , '투기적 목적을 제외한 파생금융거래'다.

회계처리 역시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9조에 따라 예금과 보험을 나눠 '우체국예금특별회계', '우체국보험특별회계'로 따로 분류된다. 세입과 세출도 해당법 11조2항을 통해 '번 돈'과 '쓸 돈'의 내역이 모두 관리된다.

이런 규정을 근거로 우정사업본부 자금의 대부분은 용처가 미리 정해져 있다.

우선 지난 2006년까지 우체국예금은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의거, 보유자산 상당액을 공자기금에 예탁해야 했다. 40조원에 육박하는 공자기금 중 10조원 이상이 우본에서 나온 돈이다.

맡겨진 돈은 의무적으로 5년동안 예치되기 때문에 유동성이 크게 제한된다. 게다가 공자기금이 우정사업본부에 제공하는 이자는 잘 받아야 고작 국고채 5년물 유통수익률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2006년 6월 공자기금법 개정안이 마련되면서 의무예탁 제도는 폐지됐지만 과거에 맡긴 돈은 예치기간을 채운 후에야 되찾게 된다.

각종 예탁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도 투자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 있다.

우체국금융은 시중은행이나 민간 보험사와 달리 '대출' 형태로 자산을 운용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공격적 투자의 핵심인 주식투자 비중도 높이기 어렵다. 주식 투자 최대한도가 예금자산의 5%, 보험자산의 20%다. 실제 투자비중은 이보다 훨씬 낮고 대부분 수십개 위탁운용사를 통한 간접투자다.

국민연금 등 다른 연기금이 주식투자비중을 10%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채권비중을 줄일때 우정사업본부가 이런 흐름을 따르지 못한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우정사업본부의 올해 주식투자 비중은 전년보다 0.3%포인트 정도 높아진 예금자산의 3%내외(1조 2000억~3000억원). 헤지펀드나 파생상품 투자도 조금씩 손을 대고 있지만 전체 자산규모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자금회전율 1년 미만...안전성만으로는 경쟁력 확보 안돼

우정사업본부가 조달하는 자금의 성격 또한 고수익의 걸림돌이다.

우선 예금의 경우 농어촌 등 소외지역의 자금이 원천이다보니 예금자산의 99% 이상이 5000만원 미만의 소액계좌다. 보험상품은 아예 가입한도가 4000만원에 불과하다. 또 수익확보에 도움을 주는 종신보험이나 퇴직연금 등 장기상품 출시도 불가능하며 앞으로 이런 규제가 풀릴 가능성도 적다.

정부는 작년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체국금융이 변액보험, 퇴직연금보험, 손해보험 등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신상품 개발도 안된다. 국가운영 금융사인 우체국의 보험사업이 민간과 동일한 경쟁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원칙 때문이다.

전체 자산규모는 공룡 수준이지만 구성내역이 소액계좌여서 큰 투자처에 한꺼번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운용자산의 잔존만기(듀레이션)가 짧다보니 단기운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우체국예금의 자금회전율은 평균 6~9개월에 그친다. 그러면서도 단기자금 운용의 한 방편인 콜자금 투자의 길도 막혀 있다.

우정사업본부 운용자산 60조원의 절반 가량이 시중은행의 예금 등으로 묶여 잠자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들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제도적 한계를 이유로 우정사업본부는 여타 연기금과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잔존만기가 10년이 넘는 국민연금과 불과 1년도 제대로 굴리기 힘든 우정사업본부의 수익률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대신 우정사업본부는 자산운용 과정에서 적자는 물론, 역마진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수익 보다는 '서민금융 지킴이'라는 가치를 우위에 놓고 본다면 현재 수익률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

그러나 금융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투자환경의 급변으로 우정사업본부의 존립근거나 기능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마당에 '안전성'만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미 인터넷뱅킹에 기반해 투자창구는 충분히 다양해졌고, 하루가 멀다하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금융 신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또 은행예금만 선호하던 농어촌 지역에까지 불어닥친 주식형펀드 열풍 등은 '원금보장'에 대한 맹신을 뒤흔들어 놓은지 오래다.

더 이상 '국가가 보장한 안정성'과 '전국 곳곳에 빠짐없이 배치된 우편창구'라는 장점만으로는 우체국금융의 생존이 보장될 수 없다.

공익성과 편의성에도 불구, 우체국금융의 낮은 수익률 때문에 서민들조차 발길을 돌릴 경우 농어촌 주민을 위한 서민금융서비스라는 설립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민영화를 앞둔 우정사업본부의 수익률 제고가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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