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그리고 불신 비용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 2008.05.14 16:47

[쿨머니칼럼]기업이 알아야 할 불신의 심리

'미친 소, 너나 먹어라.' '소간다, 속았다.' 광우병 괴담으로 '값싸고 질 좋다'는 미국산 쇠고기는 바로 미친 소가 되었다.

황급하게 정부와 전문가들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36억분의 1',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했을 순간에 벼락을 맞을 경우'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기도 전에, 국민들의 마음은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으로 굳어졌다. 아니, 더 확대되어 '쇠고기=광우병'이 되었다.

광우병과 아무 관련 없는 한우 식당마저 썰렁해졌다. "라면, 젤리, 화장품에도 소 부산물 추출물질이 들어가므로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루머까지 퍼졌다.

과거에도 종종 소비자의 불안과 혼란은 돌풍처럼 나타났다. 만두 속 파동이나 김치 파동, 새우깡 관련 이물질 사건은 먹거리와 관련된 소비자의 히스테릭 반응을 잘 보여준다.

충격적인 이미지나 상상만으로 우리는 자신이 희생자가 된 것처럼 반응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없어서 못 먹을 쇠고기이지만, 바로 위험물질이 된다.

'복어에서 독을 제거한 수준의 위험성'이라는 말에서 대중은 곧바로 복어 독을 먹고 죽은 사람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이다.

내가 우주인이 될 가능성은 낮더라도 우주인이 누구인지 안다면, 관련되는 무엇이든 그것은 나와 곤련된 생생한 사례가 된다. 상상할 수 있을 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어떤 상황이 '위기'라고 믿는 인간에게 '위기의 가능성이 낮다'고 강조하는 것은 위기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재 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불 난 영화관에서 침착하게, 차분하게 움직여야 다 함께 사는 것과 같은 심리작용이다.

잠재적인 위험요인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 노력이다. 하지만 감성적인 소비자, 대중의 마음을 잡으려면 안전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삶이 불안하고 힘들 때 사람들은 '발생 확률'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확률은 과거에 일어났던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불안할 때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마치 종교적 신앙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한다.

따라서 위기 관리를 위해선 대중 혹은 소비자가 믿고 있는 일상이 무엇인지, 그것을 깨트리는 위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안정적 일상'은 대중에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자, 기반이다. 일상의 안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을 믿지 못한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불신의 비용'이다.

돈의 힘을 믿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니 돈 이외에 다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광우병 사태는 바로 우리 사회의 신뢰위기,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불신의 비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에게 "미국산 소는 안전하다"며 믿기를 강요하면 '나'는 그를 더욱 더 믿을 수 없다. 심지어 '나'에겐 그의 주장에 더욱 반대되는 사실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마음이 더 생긴다. 기성세대를 믿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먼저 나선 이유는 이런 불신과 불만의 표출이다.

광우병 괴담은 일상의 평정심을 아주 효과적으로 깨트렸다. 정부의 황급한 위기대응은 불신을 위기로 확산시키는 아주 훌륭한(?) 대응책이었다. 결과는 처참한 '불신의 확산'이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불신할 땐 '내(우리 기업)가 최악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신뢰를 회복시킬 위기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또, 사람들한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다.

광고나 홍보, 설득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싶은 기업이라면 대한민국 정부 사례를 반면교사로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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