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막고 눈감은 '자통법 2가지 오류'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 2008.05.13 10:48

[자본시장을 숨쉬게 하자]<1부)③거꾸로 간 자통법

증권업계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의 졸속 추진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원칙과 기준에 얽매어 있다고 비판한다.

A 증권사 투자은행(IB) 담당 임원은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은 매우 복잡미묘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조차 새로 도입하는 금융정책의 파급효과와 긍·부정 영향에 대해 선뜻 말하기 어렵다"며 "자통법의 경우 금융·자본시장을 뿌리째 바꾸는 대혁신책인데,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쉽게 접근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통법의 얼개를 만들면서 얼마나 시장의 목소리와 현장의 요구를 감안했는지 궁금하다"며 "지금이라도 대형 금융회사보다는 중소형 금융회사들의 이익을 지나치게 고려한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대형 글로벌 IB 출현을 유도하겠다는 원칙을 저버린 것인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탁상공론, 표류하는 IB=자통법은 금융회사간 권역구분을 줄이고, 금융·자본시장의 통합을 적극 유도해 대형 글로벌 IB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것이 제1원칙이라고 금융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글로벌 IB를 육성하려는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은 오히려 이에 역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증권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IB 육성을 위해 선택한 카드 때문이다. '경쟁을 촉진'시켜 업체간 인수·합병(M&A) 등을 유도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복안이다.

업계는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취지 아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려 하는데, 이는 오히려 대형 글로벌 IB의 육성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종합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의 자기자본금을 당초 '1조원 이상'에서 '2000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증권·자산운용사들은 대부분 그대로 금융투자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되고, 신규로 진입하는 업체들도 보다 쉽게 종합 금융투자업에 뛰어들 수 있다.

게다가 얼마전 발표된 시행령을 보면 업무 인가 대상을 무려 △대분류 3개 △소분류 42개로 세분화했다. '특정 업무에 특화하는 전문 금융투자업자의 신규진입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인가·등록단위를 보다 세분화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는 현행 증권사는 물론 신규 진입하는 금융회사들에 '퇴로'와 '인공호흡기'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진입을 쉽게 해 경쟁을 유도하되 퇴출도 강화해 대형 IB 출현을 지원한다'는 금융당국의 취지가 그야말로 '구상'과 '기대'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가뜩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거래 대금감소 추세, 국민은행 등 증권업 진출, 증권사간 경쟁격화 등으로 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이같은 방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결국 목적(대형 글로벌 IB의 출현 유도)과 수단(경쟁 촉진, 퇴출 강화)이 엇박자를 내며 시장에 커다란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 경쟁 속에서 금융회사들의 수익이 급격하게 악화돼 '선순환을 위한 경쟁'이 아닌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이전투구식 싸움'이 벌어지고, 이는 글로벌 IB 출현보다는 시장 혼탁과 고객 피해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졸속' 자통법=금융당국은 글로벌 IB 출현의 한 방식으로 '특화 증권사의 적극 육성'이란 카드를 내놨다. 몇몇 부문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의 출현을 적극 유도해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복안이다.

금융당국은 '업무단위 세분화로 적은 자본으로도 진입이 가능하게 돼 창업이 원활화되고 일자리 창출도 확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구멍가게식 소규모 회사'를 제아무리 많이 세워도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가능하지 않다고 업계는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통법이 얼마나 시장 이해와 요구를 무시한 채 추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C 증권사 관계자는 "특화 증권사란 발상은 한마디로 넌센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국내 IB 부문의 시장 규모는 아직 기대만큼 크지 않다"며 "이런 가운데 소규모 특화증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경우 수익성 확보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객 피해도 매우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중소형 금융회사를 양산시켜 국내 증권업을 대표적인 '레드오션'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업계는 걱정하고 있다. 원칙을 제대로 살려줄 수단을 찾지 못했고, 심지어 시장 요구와 예상 효과 등을 무시한 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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