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산업 恐中病',좁아지는 '기회의 땅'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 2008.05.20 12:30

[머니위크 커버스토리]엇나간 중화민족주의

4월27일 일요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내국인이 외국인 무리에게 무차별 구타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며 피켓시위를 하던 내국인들이 중국 유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발단은 중국이 티베트 독립 시위를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자세로 대처하자 세계 각국이 중국을 질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부 국가에서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며 압박을 가했지만 중국은 자국 내 문제를 왜 외국에서 간섭하느냐며 묵살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통해 자본력있는 부모를 둔, 중화사상을 머리깊이 새겨 넣은 10~2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외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무장한 이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또래의 자국 청소년들과 교감하면서 민족우월주의를 애국심으로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엇나간 민족주의는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는 경우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들은 티베트의 독립과 폭력적인 시위진압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단체의 피켓 항의를 마치 중국의 올림픽 개최를 무산 내지는 훼방놓으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폭력행위를 보인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의 반중감정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이미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큰 상처를 받은 한국인은 자국민이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인 무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함에 따라 더 큰 반중 감정에 휩싸이게 됐다.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만 볼 것인가

감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앞으로 중국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물음표를 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야반도주하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한국 기업이 중국 땅에서 얼마나 자리 잡기 힘든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소기업 야반도주의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유행처럼 번진 차이나붐에 휩쓸려 시장조사 없이 중국시장에 진출한 국내기업의 준비 부족 ▲한국 기업의 업종 자체가 공해 등이 유발되는 임가공 및 공해산업에 집중 ▲한국 기업의 합법적 청산을 위한 지원책의 미비 ▲일부 한국 기업의 방만한 경영상태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중국 내 입지한 국내 기업은 공장 설립 시 발생하는 부지 임대료나 각종 세금을 감면 받으면서 싼 노동력을 동원해 제품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중국은 경제특구 등에 각종 특혜를 줘 외국계 기업이 입지하는데 큰 보탬을 주었다.

그러나 기업이 사업을 청산하고 나갈 경우 그동안 받았던 각종 혜택 등에 대해 모두 가치를 치르고 나가야 한다. 기업이 경영악화로 중국에서 철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야반도주에 대한 유혹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중국 내 한국 기업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데는 중국의 경영환경 악화에 기인한다. 중국은 2006년부터 외부에서 부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품목을 제한해 왔다. 즉 중국 내에서 원자재를 구입하지 않던 국내 기업은 이로 인해 원자재가격 상승을 일찌감치 맛보게 된 것이다.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지난 5월8일 삼성증권이 개최한 삼성 글로벌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중국의 고속성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관심이 많다”며 “중국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산업의 비효율성, 인플레이션,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에는 부정적”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진출에 걸림돌 많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인건비가 싸고 노무관리상 유연성이 큰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끝났다고 단정하고 있다. 숙련공을 제외하고도 인건비가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해마다 10%대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고 올해부터 적용되는 신 근로계약법에 따라 고용환경도 열악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더욱이 3년간 세금감면과 이후 3년간 15%의 세금 유예기간 등 외국자본에 대한 세금 우대방침이 없어지고 중국 내 기업과 동일하게 초기 15%에서 최고 25%의 법인세율을 적용받는다.

굴뚝산업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공해배출업종에 대한 단속과 규제도 우리 기업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첨단산업 중심으로 산업 클러스터를 재조정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서는 등 한국에서 규제를 피해 중국으로 갔던 공해배출업종은 이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중국의 물가 인상이다. 지난해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5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급상승하는 물가 상승과 더불어 인플레의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국 내 원자재 소비를 원칙으로 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자금 압박과 유통 및 수급 과정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조선산업

중국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세계의 공장으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대형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에 있어서도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산업. 가전, 자동차, 철강 등에 있어서는 아직 국내 유수의 기업에 비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조선산업은 국내 조선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5월8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의미있는 자료를 내놨다. 국내 해운 및 조선업계가 벌크선의 운임지수인 BDI가 1만포인트를 돌파했다고 발표한 것. BDI는 벌크선을 제조하는 회사의 영업이익을 가늠하는 주요 지수로써 지난해 11월13일 최초로 1만포인트를 기록한 후 재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그리 기뻐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는 중국이 막대한 원자재를 빨아들여 벌크선의 건조량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능력 기준 세계 20위권 조선소 가운데 중국 조선소의 수만 봐도 2006년 4개에서 지난해 10개로 늘어났다.

수주량을 비교해도 지난 1년간 중국의 조선산업 변화는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2006년 말까지 1억69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2007년 2억9200만CGT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2억300만CGT에서 3억2000만CGT로 성장한 것과 비교할 때 놀라운 수치다. 이미 중국 기업이 한국의 수주량을 위협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세계 상위권인 국내 조선업계가 발주하는 물량은 컨테이너선이나 LNG선이니만큼 분명히 벌크선과는 구분된 시장을 갖고 있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조선산업이 급속히 확장하고 있어 일부 국내업체가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산업이 세계 1위의 자존심을 지켜온 한국의 조선업계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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