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물 끓이는 것 보셨어요?

부안=황국상 기자 | 2008.05.08 11:39

[쿨머니 지구를 지켜라]<3-1> 신재생에너지 개발하는 풀뿌리 왓컴들

↑ 조금준 에너지마스타 생산기술부장이 물렌지로 지은 쌀밥을 보여주고 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나무 상자 안에선 물로 피워올린 불이 물을 끓이고 있었다. 파란 불꽃 위에서 냄비 속 물은 보글보글 끓으며 하얀 김을 내뿜었다. 그 옆의 압력밥솥에선 구수한 냄새와 함께 쌀이 익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열린 '제2회 전북 부안 유채꽃 축제' 행사장. 누런 나무판으로 만든 이 시제품은 사람들을 하나둘 끌어모았다. 제품 이름은 '물로만(MulRoMan) 물렌지'.

조금준 ㈜에너지마스타 생산기술부장은 "불꽃을 피워내는 연료는 오로지 물(H2O)뿐"이라고 설명했다.

상자 안에 액화석유가스(LPG)통을 감춰둔 건 아닌가 싶어 분리해봤다. 안엔 자동차 엔진 냉각장치(라디에이터)처럼 생긴 장치만 있었다. 혼합가스를 만들어내는 전해조, 물렌지의 핵심장치다.

↑ (주)에너지마스타의 '물로만(MulRoMan) 물렌지'. 비커(왼쪽)에 담긴
물은 투명한 관을 통해 전해조로 들어가 수소(H2)와 산소(02)로
분리됐다. 여기서 나온 수소·산소 혼합가스가 '물렌지'의 연료가 됐다.
배출물로는 수증기만 나왔다.
비커에 담긴 물은 투명한 관을 통해 전해조로 들어가 수소(H2)와 산소(02)로 분리됐다. 여기서 나온 수소·산소 혼합가스가 '물렌지'의 연료가 됐다. 배출물로는 수증기만 나왔다.

"수소·산소 혼합가스 발생량은 전극판과 전해액의 접촉면적에 비례합니다. 기존 전극판이 평평한 구조로 돼 있어 혼합가스 발생량에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전극판을 계단식으로 배열해 전해조 크기도 줄이고 가스 발생량도 늘렸습니다."

조 부장은 "조리기 가동을 위해 800와트 정도의 전기만 쓰인다"며 "이는 가정용 커피머신(약 1000와트)보다 더 적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용화까지 아직 먼 단계"=에너지마스타는 2005년 문을 연 신생회사지만, 이 회사가 특허청에 출원한 특허·실용신안은 총 15건에 이른다.

이 중 '수소·산소 혼합가스 발생장치의 전극판 및 전극판 진동 구조' 기술은 적은 전력으로 다량의 수소·산소 혼합가스를 얻기 위한 기술이다.

'수소·산소 혼합가스 발생비율 조절장치'는 혼합가스가 폭발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소하기에 좋은 배합 비율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이다.

조 부장은 "그냥 태우면 6000도까지 올라가 사용하기 힘든 수소 불꽃을 900~1200도 온도로 낮춰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력도 갖췄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술로 에너지마스타는 매년 물연료 조리기구 1만대, 가정·산업용 보일러 1만대, 차량용 연료절감기 3만대 등 10종의 제품을 생산·판매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자동차용 연료절감기(왼쪽)과 가정용 수소산소 혼합가스 보일러.
조길제 에너지마스타 대표는 "궁극적인 목표는 수소엔진과 수소발전소"라며 "지금보다 수소·산소 혼합가스 발생효율을 높여 발전소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뿐더러 곧 산유국이 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상업적 가치를 인정 받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우선,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표준이 그 어느 국가에도 정립돼 있지 않다.

한 자동차회사의 환경공학 박사는 "당장 자동차용 연료절감기만 해도 시판할 경우 자동차 장치 관련 법률에 저촉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적인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는 물을 분리하기 위해 전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되레 에너지 낭비이자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고 지는 풀뿌리 왓컴들=고유가 행진 속에 국내에서도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왓컴(WATTCOM,에너지 관련 벤처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태양광·풍력·수소·수력을 비롯해 바이오디젤 등 11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풀뿌리왓컴들은 지역에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왓컴들이 여러가지 시행착오 속에 경제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지역민의 관심을 모았던 부안의 유채꽃네트워크 역시 '봄 한파'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딪혔다. 지난해에 이어 유채꽃이 충분히 재배되지 못한 것이다.

그 탓에 올해 열린 부안유채축제 행사장은 썰렁했다. 전북 부안에서 바이오디젤용 유채를 재배하고 있는 김인택 씨는 "올 초 유독 심했던 한파 때문에 유채 싹이 다 얼어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일찍 파종했던 유채가 제대로 뿌리를 내려 꽃봉오리를 활짝 피웠지만 10일 정도 늦게 파종했던 유채는 전멸했다.

↑ 제2회 부안 유채꽃 축제 행사장(왼쪽)과 견학 온 지역 유치원생들.
김 씨는 "원래대로라면 0.5헥타아르(1500평)당 3톤의 유채씨가 수확돼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2톤이 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수확량도 간신히 2톤을 넘겼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김형진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보급실장은 "자금력과 시장창출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조차 적극 뛰어들기 힘든 곳에 덩치가 작은 기업이나 개인·단체가 풀뿌리 식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이상 올라가는 지금은 에너지 비상사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은 효과가 없고 경제성이 낮다더라도 원천기술 확보 차원에서 풀뿌리 단체나 중소업체들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뛰어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4. 4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