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단백질 중독증, 소의 복수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8.05.06 11:46
고기를 자주 드십니까. 육식을 한 두 끼만 하지 않아도 허전하진 않습니까. 순 살코기 보다 지방이 많이 섞인 게 훨씬 맛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고기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편에선 단백질 중독에 걸렸다고도 볼 수 있고요.

고기는 먹으면 먹을수록 기름기가 포함된 부위를 좋아하게 되지요. 쇠고기는 지방이 꽃처럼 피어있는 꽃등심이 제일이고, 돼지고기도 살코기와 지방이 절반정도씩인 삼겹살이 맛있지요.

고기를 즐겨 먹을수록 기름기가 섞인 부위를 찾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일찍부터 탐욕적으로 쇠고기를 먹었던 민족은 영국인입니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했던 영국은 국내 쇠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 거대한 초원을 개발, 대대적으로 소를 사육하게 되지요.

문제는 대초원에서 풀만 먹고 자란 소는 지방이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쇠고기를 조상 대대로 즐겨 먹었던 영국인들 입맛엔 맞지 않았지요.

지방이 충분히 포함된 쇠고기를 생산하려면 소를 비육우로 키워야 했습니다. 소한테 곡물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19세기말 미국에서는 옥수수가 처치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소에게 곡물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일은 그러나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광우병의 비극도 여기에 그 단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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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초식동물입니다. 옥수수와 같은 곡물을 먹이게 되면 여러 가지 소화기 질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더욱이 단기간에 소를 살찌우기 위해 곡물사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동물의 살과 뼈가 포함된 사료를 먹이기까지 했으니 소가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세계적으로 보면 소 광우병도, 인간 광우병도 단연 영국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쇠고기와 비육우에 얽힌 이 같은 역사를 알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영국인들에 대한 소의 복수라고도 할 수 있지요.

쇠고기는 양질의 단백질과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 철분, 비타민 등 영양분의 보고입니다만 그 이면에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버펄로와 이를 토대로 수천년간 살아왔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희생이 우선 그것입니다. 미국의 서부지대는 수천년 이상 아메리칸 버펄로와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남북전쟁 이후 영국자본이 들어와 소 사육에 나서면서 인디언도, 버펄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육우기지화는 미국 서부지역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초원으로 확산됐습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불타 목축장으로 바뀌었고, 소들에게 먹일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지역의 토착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세계인구중 10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금도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정도는 소를 비롯한 가축사육에 소비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는 ‘가축의 캐딜락’이라 불릴 정도로 음식물의 에너지 전환이 비효율적입니다. 우리가 쇠고기를 즐겨 먹는 대가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천문학적 인구의 절대 빈곤화, 열대우림의 파괴와 사막화, 물 부족 사태와 지구 온난화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육류 섭취와 단백질 중독의 대가는 엄청납니다. 이런 점에서 단백질 중독은 광우병의 원인 제공자이지만 광우병 보다 더 무서운 질병입니다.

광우병만이 아니지요. 지금 우리를 떨게 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 역시 단백질 중독의 유산입니다. 인간에 대한 닭과 오리의 복수입니다.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말합니다. 육식문화를 초월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원상태로 돌리고 온전하고 만들고자 하는 징표이자 혁명적 행동이라고요. 자연을 회복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추신>‘강부자 내각’에 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따른 광우병 논란이 겹치면서 출범한 지 겨우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여론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는가 하면 포털 사이트에선 대통령에 대한 탄핵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지율이 20~30%대로 떨어지거나 탄핵을 받는 일은 이명박 정부가 전면 부인하고 있는 전임 노무현 정부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현 정권에서, 그것도 집권 초기에 일어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역설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새 정부만 출범하면 특기를 살려 나라 경제가, 나라 살림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질 줄 알았는데 일자리 창출도, 경제 살리기도 이전 보다 좋아진 게 없으니 말입니다.

알고 보면 그게 인생이고 역사이고 정치입니다. 이 세상엔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없습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게 추한 것이요, 추한 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역사 앞에서, 인생 앞에서, 국민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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