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테러리스트의 승리'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8.04.28 12:38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시지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부왕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는데, 부왕의 죽음이 숙부의 계략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더욱이 아버지가 살해된 후 한달 만에 누구보다 정숙하다고 믿어온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집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사는 게 장한 일인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서 무기를 들고 대항하다 죽는 게 옳은 일인가, 겨우 한 달 만에…. 아예 생각을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구나." 저 유명한 햄릿의 독백에서 그가 겪은 고뇌와 비극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 비자금 사태'가 이건희 회장의 퇴진으로 끝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햄릿의 고뇌와 비극이 떠올랐습니다.
 
삼성 특별검사팀은 차명계좌를 통한 4조5000억원의 비자금 관리와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의 혐의로 이건희 회장 등 10명을 기소했지만 계열사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의혹 등에 대해선 무혐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더욱이 특검은 이 사건이 재벌그룹의 경영 및 지배구조를 유지·관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내재돼온 불법행위로, 전형적인 배임이나 조세포탈 범죄와 다른 측면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이건희 회장은 본인 퇴진은 물론 홍라희 관장과 이재용 전무, 게다가 이학수 부회장 등 핵심 측근들의 일선 후퇴,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단행했습니다.
 
이 회장의 결단은 살고자 한다면 죽어야 한다는 역설적 논리 아래 내려진 치밀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과정에 대비하자는 현실적 계산일 수도 있고요.
 

이게 다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성적이고 완벽 추구형의 주도면밀한 성격에 66세의 나이와 과거 병력, 6개월여에 걸친 회한과 자책감을 감안하면 자포자기적, 또는 자폭적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이 회장의 병력과 건강상태를 보면 상식적으로도 그가 수명을 다 누리려면 이제 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빼고는 다 다녀야 건강을 지탱한다는 이학수 부회장 역시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것같습니다.
 
선대 회장 때부터 모아온 1만5000여점의 국보급 미술품 컬렉션이 장물로 간주돼버린 현실 앞에서 이 회장이나 홍 관장, 삼성의 자존심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계열사에서 빼돌린 비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사모았다는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검찰이 용인 에버랜드 안내견학교에 있던 미술품 수장고를 뒤지고 이를 그야말로 리얼타임으로 생중계한 것은 현대판 분서갱유입니다. 너무 잔인했지요.
 
6개월여에 걸친 삼성 비자금 사태는 특검의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공격자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사제단의 승리로 끝나고 있습니다. 누군 이것을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승리'라고 하더군요. 반박을 못하겠습니다.
 
이번 사태가 비극적이게도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햄릿에서처럼 복수는 하지만 모두가 죽는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진 말아야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진입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국민소득 5만달러, 5대 경제강국에 들 수 있다면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처럼 20% 수준이 아니라 30% 수준으로 올라가면 어떻습니까.
 
오너 경영이냐, 전문인 경영 체제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삼성이 지배구조의 실험장이 돼서도 곤란합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복원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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