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규제 풀지만 사후감시는 철저"

대담=권성희 정경부장,정리=이상배 기자 | 2008.04.28 09:52

- 백용호 공정위원장, 머니투데이 인터뷰
- "아이에 재량권 주고 잘못되면 야단치듯 사후감시"
- "상호출자 규제는 유지..지주사, 금융자회사 허용 검토"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을 경제활성화, 시장활성화 쪽으로 옮겨갈 계획입니다. 경쟁을 촉진, 활성화시켜 시장경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입니다"

백용호(52) 공정위원장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공정위의 역할은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업과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이 성숙한 만큼 무엇인가를 못하도록 미리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되 사후감시를 철저히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과외선생’으로 불리는 백 위원장을 서울 반포로 정부청사에서 만나 '친시장적'이되 철저한 시장의 감시자로서 공정위의 위상 정립에 골몰하는 그의 구상을 들어봤다.

-새 정부 들어 공정위의 역할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 키우는 것과 같다. 아이의 성숙도에 따라 육아법이 바뀌어야 한다. 아기일 때는 다칠까, 병날까 두려워 무조건 못하게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재량권을 주고 잘못 되면 나중에 야단을 치고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젠 규제를 좀 풀어 기업이나 국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되 사후감시를 철저히 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모든 규제를 다 푼다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사전적 규제는 유지할 생각이다.

-규제 완화에 대해 우려도 있다. 너무 풀어주면 시장 질서가 문란해질 거란 지적인데…
▶기업들은 규제를 더 풀라고 하고 시민단체들은 더 풀면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모든 조치가 다 그렇다. 공정위는 균형감을 갖고 적정선에서 판단을 할 것이다. 다만 경쟁을 촉진시켜 시장경제의 장점이 극대화하도록 한다는 원칙은 갖고 있다. 가격결정에 있어서 경쟁을 막는 행위, 품질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 시장 진입을 막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감시자 역할을 할 생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사회적으로 갑을관계에 있는 분야가 있다. 약자 보호도 중요할 것 같다.
▶대기업, 대형 유통업체, 포털 사이트 등 거래관계에서 한 쪽이 우월적 입장을 점하는 분야가 분명히 있다. 그런 분야의 경우 을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쟁이다. 권투를 할 때도 몸무게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함께 링에 올리지 않고 체급을 조정하지 않나. 시장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자유 경쟁일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쪽은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은행 간 M&A를 통해 외국계 대형 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는 메가뱅크 또는 챔피언뱅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메가뱅크 또는 챔피언뱅크 등 초대형 은행이 나올 필요가 있다. 메가뱅크나 챔피언뱅크가 탄생하더라도 우리나라 은행시장을 전부 독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은행시장은 지금도 과점체제다.

시장획정에 있어 조금은 견해가 달라져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업종이나 시대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기업결합 심사 기준에 있어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것이다.

-시장획정 때 국내시장만 보고 독과점 문제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인가
▶시장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고 시장의 동태성이 강해지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시장획정 때 시장의 융합과 시장의 동태적 성격 등을 고려해 그 범위를 국내시장 이상으로 넓혀야 한다. 은행 간 M&A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 때 국내시장에 한정해 보기보다 다른 경제적 요인도 고려해 사안별로 판단하겠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주요 포털 사이트들의 불공정거래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안다.

▶조사 결과 주요 포털업체들과 콘텐츠 제공업체 사이에서도 일반 대기업과 중소 납품업체간 불공정거래와 유사한 패턴이 있었다. 콘텐츠 제공업체의 자체 광고를 막는다든지, 가격을 낮게 요구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음달에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법 위반 사례가 있으면 조치도 있을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간에도 끊임없이 불공정거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포털업체와 콘텐츠 제공업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본다. 제조업과 유통업체의 관계로 한정해 보자면 과거에는 제조업이 힘의 우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유통업이 우위다. 매장이 많아 구매력이 커진 측면도 있지만 정보의 비대칭성도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조장하고 있다. 유통업체는 제조업체보다 소비자들의 취향 등과 관련해 정보가 훨씬 더 많다. 포털업체들도 콘텐츠 제공업체보다 네티즌들의 성향 등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우려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경쟁 마비가 아닐까 한다. 이런 점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출총제 폐지로 기업들이 방만하게 투자해 문어발식 확장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규제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시장이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성숙한 만큼 시장이 1차적으로 감시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상장사는 주가로 시장의 평가를 받는데 최고경영자(CEO)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시장에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나. 기업은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주주들은 이런 정보를 통해 기업을 평가한다. 이것이 주가에 반영되는 것이다. 시민단체도 많고 주주들의 의식도 성숙한 만큼 대기업이 옛날처럼 방만하게 투자하고 경영하진 못할 것이다.

-대기업이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했던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출총제는 재벌을 규제한다는 상징성 밖에 없어서 폐지해도 기업 투자에 영향이 없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기업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규제를 푼다는 인식을 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투자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본다. 새가 새장에 갇혀 있을 때 새장에 부딪히는지는 않는다. 하지만 새장을 없애면 새는 더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대기업에 대한 상호출자 제한 규제를 완화하긴 했지만 계속 유지할 필요는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상호출자 제한 대상을 현재 자산총액 2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높일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수는 많이 준다. 이렇게 완화하긴 하지만 상호출자 규제를 유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상호출자 규제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기업을 만난 적은 없다. 상호출자 규제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상호출자가 허용되지 않아 투자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법과 규제는 환경에 따라 항상 변하기 때문에 상호출자 규제가 언제까지 유지돼야 하는지는 모른다. 아이들이 더 성숙하면 부모의 간섭도 더 줄어들어야 하지 않겠나.

-출총제를 없애는 대신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출자구조를 공시하는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 순환출자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삼성도 부담을 느끼고 시차를 두고 순환출자를 풀겠다고 한 것 아니겠나.

순환출자를 금지하기 보다는 순환출자를 끊고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만들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단순한 지배구조를 가지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있을 것이다. 지주회사라는 지배구조가 순환출자보다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지주회사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두는 것을 허용할 계획인가
▶검토 중에 있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제한) 완화 방향에 따라 관련 법을 맞춰가겠다. 금융위원장과도 만나 얘기했다. 금융위, 기획재정부 등과 협조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 그러나 아직 정한 바는 없다.

-골프장그린피, 맥주, 자동차 등의 국내외 가격을 공개 비교해 가격인하를 유도할 계획인 것으로 아는데 언제쯤 시행되나
▶국내가격이 국제가격보다 현저히 높은 품목에 대해 단순한 가격차이 정보 뿐 아니라 차이에 대한 원인분석 결과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우선 5월 중순까지 국민생활과 밀접한 상품 가운데 국내외 가격차가 큰 골프장 그린피, 커피, 맥주, 화장품 등 6개 품목에 대해 가격차이 실태와 원인분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재벌정책당국의 수장으로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을 바라보는 견해는?
▶삼성 사태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 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못하고 발목잡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 삼성이 도약하고 한국 기업들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비용을 치렀으니 수확도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고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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