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클린]책읽는 섬마을 아이들

마라도(제주)=성연광 기자 | 2008.04.24 08:54

[따뜻한 디지털세상]u세상 행복나누기-마라도에 생긴 도서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하지만 그 상징성에 비해 섬 자체는 아담하다. 해안선 길이가 고작 4.2Km.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섬 한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섬 주민은 대략 40여가구에 70여명 정도. 주로 전복, 소라, 톳, 미역 등을 캐거나 민박, 식당, 관광 골프카 등으로 소득을 올린다.

이 작은 섬에도 초등학교가 있다. 섬 중앙에 있는 가파도 초등학교 마라도 분교가 그곳. 학생이라 해봐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현진(10)과 이제 막 입학한 라해빈(8)과 정수현(8) 등 3명이 전부다.

섬 곳곳을 뛰놀다 와서일까. 갯흙 묻은 옷가지, 간간이 튀어나오는 사투리, 낯선 이방인에 대한 수줍음까지. 섬마을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전달됐다.

이 아이들에게 봄바람처럼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생기면서부터다.

↑마라도 분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왼쪽부터 수현이(1년), 현진이(3년), 해빈이(1년). 영진이(6살). 영진이는 이 마을에서 가장 어린 꼬마다. ⓒ성연광 기자 saint@
◇ "그래도 마라도가 제일 좋아요"

작년까지만해도 마라도 분교의 재학생은 마라도에서 횟집일을 하시는 엄마와 살고 있는 현진이가 유일했다.

이곳 마라도 분교는 한때 학생수가 3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섬 인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현진이만 남았던 것. 그러나 다행히 올해 해빈이와 수현이가 새로 입학하면서 전체 학생이 3명으로 불었다.

이곳 섬마을 학교생활은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학생수가 워낙 적다보니 한 교실에서 전학년 수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오빠 현진이가 국어, 수학, 사회, 영어 등 3학년 수업을 받고 있는 동안 해빈이와 수현이는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등 1학년 수업을 받는다.

↑마라도 초교 교정에서 뛰노는 아이들. ⓒ성연광 기자 saint@
이제 갓 입학한 해빈이와 소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매일 아침 8시30분에 시작되는 아침활동이다. 미로찾기퀴즈를 풀거나 그림 색칠하기를 한다.

해빈이와 수현이는 정오가 되면 모든 학교 수업이 끝나지만, 현진이는 3학년이 되면서 동생들보다 한시간 더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도 한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현진이는 내심 좋기만 하다.

이곳 섬마을 학교가 육지의 학교들과 다른 점도 물론 있다. 무엇보다 급식이 없다. 학교가 끝난 뒤 각자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 물론 교사 재량에 따라 학생들이 배가 고픈 경우, 쉬는 시간을 이용해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올 때도 있다.

마라도에 없는 또 하나가 바로 우유다. 작년 11월 이곳에 들어선 24시 편의점에도 우유는 안판다. 수요도 없지만 워낙 짧은 유통기한 때문이다. 지난해 이곳에 부임했다는 현종환(30) 선생님이 섬마을 아이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다.

다행히 이달부터 마라도 분교 아이들도 우유를 먹고 있다. 학부모들이 육지에서 유통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멸균우유'를 직접 사오는 형태로 급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마라도는 해물 자장면이 유명하다. 관광객들에게는 명물이겠지만 이곳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간식이다. ⓒ성연광 기자 saint@
여기서 궁금한 거 또하나. 방과 후 섬마을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놀까? 마라도 전체를 꼬박 둘러봐도 아이들이 놀 곳은 없어 보인다. 유치원이나 학원은 고사하고 PC방, 놀이방도 없다.

하지만 이곳 섬마을 아이들 입장은 다르다. 하얀 등대와 태양광 발전소, 성당, 선착장 등 섬마을 전체가 놀곳 천지다. 밤에는 섬 들판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별을 헤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가끔은 방과 후 선생님과 분교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만들어진 축구장에서 시합도 벌인다. 전체 선수라 해봐야 선생님을 포함해 고작 4명이지만, 넘어져가며 공을 모는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이 없다.

혹시 뭍(육지)에서 사는 다른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까? 하지만 이곳 섬마을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다. "아뇨. 이곳 마라도가 제일 좋아요"라고.

◇ "소방관이 제 꿈이에요"


섬마을 아이들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현진이는 대번 '소방관'이요 소리친다.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현진이의 꿈은 사실 어릴때부터 한결 같았다. 불을 끄고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는 소방관이 멋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현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도 빨간색이다.

해빈이와 소현이의 꿈은 각각 의사와 선생님이다. 특히 소현이는 현재 마라도 분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종환 선생님이 닮고 싶은 모델이다.

지난해 이곳에 부임했다는 현종환(30) 교사도 아이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성연광 기자 saint@
"얼마 전 현진이가 육지의 학교에 위탁교육을 갔을 때 '식판'을 보며 저것이 뭐냐고 묻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또 선생님이 질문하면 학생들이 먼저 손을 들고 대답을 하는 것도 현진에게는 무척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때가 묻지 않았다는 얘기죠. 친구들이 없어 섬생활이 심심할만도 할텐데 자연을 벗삼아 천진무구하게 자라는 걸 보면 오히려 부럽습니다. 육지 아이들이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갖고 살테니까요"

◇학교 마을도서관, 그리고 책

요즘 현지이와 해빈이, 수현이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산다.

이달 초 학교에 마을 도서관이 들어서면부터다. 조그만 교실 양쪽 책꽃이에는 3000여권이나 되는 책들이 빽빽이 꽃혀있다. 포털 네이버와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59번째 지원학교로 마라도분교에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 준 덕분이다.

그 전에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밖으로 뛰쳐나갔던 아이들. 하지만 도서관이 생기면서부터 아이들이 아예 학교에서 떠날 줄 모른다.

현종환 교사는 "그동안 학교에 있던 책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데다 워낙 낡아서 안타까웠다"며 "하지만 새책들이 들어오고나서 아이들이 방과 후 다시 돌아와 거의 매일 책을 읽을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도서관이 생기면서 학부모들도 더욱 좋아한다. 마을 주민 대부분 하루종일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고, 그렇다고 학원 등 교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여서 늘상 아이들에게 안타까움 뿐이었다고.

현진이 엄마는 "전에는 학교 끝나고 아이들끼리만 놀다보니 막상 불안했었는데, 요즘 현진이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책을 읽고 있다"며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 마라도 분교에 들어선 마을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성연광 기자 saint@

마라도 분교는 1958년 처음으로 설립돼 현재까지 총 85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제주도로 떠난다. 사실 마라도에서 제주도까지는 배를 타고 30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오가는 배시간이 맞지않아 대부분 그곳에서 자취생활을 하게된다고.

현진이와 해빈이, 수현이도 이곳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마라도를 떠나야한다. 그때까지 작은 도서관에 있는 3000여권의 책은 섬마을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과 '세상'을 전달해주는 창(窓)이 될 것이다.

빌게이츠도 어린시절 마을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들이 세계적인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울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배를 타고 마라도를 나오며 현재 현지이와 해빈이, 수현이가 책을 읽으며 꿈꾸고 있을 미래를 상상해본다.

적어도 어린 시절 작은 섬마을의 추억과 이곳에서 읽었던 책 한권이 이 아이들의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값진 보물로 남지 않을까.

ⓒ성연광 기자 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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