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이건희의 기이한 인연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08.04.22 15:57

[말랑한 경제-카스테라]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동갑내기다. 음력생일로 보면 그렇다. 이 대통령이 1941년 12월19일, 이 회장이 1942년 1월9일에 태어났다. 이 대통령이 3주 일찍 태어났다.

집안을 보면 이 대통령과 이 회장이 각각 '가난'과 '부'를 대표할 정도로 천양지차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공통점도 있다. 1970∼80년대에 각각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재계의 '양대 거목'을 바로 곁에서 보좌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있었던 일이다. 유신 말기였던 1979년 3월, 당시 재계 라이벌 삼성그룹과 현대건설의 감정 싸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삼성그룹 계열의 중앙일보가 1면 머릿기사로 '현대건설, 김포공항 지하도공사 부실시공', '현대중공업, 온산단지 석유저장탱크 부실시공'을 잇따라 보도했다. 양측의 대립은 일측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현대그룹은 강공을 택했다. 이명박 사장은 중앙일보를 제외한 모든 일간지에 당시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 대한 인신공격 광고를 접수시켜 놓은 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직접 찾아와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이 회장은 일본에 있었다. 막판 타협조차 물 건너 갈 판이었다.

그 때 해결사로 나선 이가 바로 이건희 당시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이명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이명박 사장, 삼성측 홍진기 회장과 김덕보 동양방송 사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튿날 새벽 5시 조선호텔에서 이뤄진 4명의 담판으로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대립은 일단락됐다.


29년 전 해결사 노릇을 했던 이 회장이 본의 아니게 21일 또 한번 이 대통령의 '소방수' 역할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첫 순방에서 귀국한 이 대통령은 '굴욕협상'이란 비판을 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과 관련,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이 사퇴를 선언했으니 자연스레 내일자 신문 1면은 이 대통령이 아닌 삼성 기사로 뒤덮이게 됐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쇠고기 굴욕협상이 아닌 삼성의 후계구도로 모아지게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해말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가 BBK 문제로 한창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며 당선 가능성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했을 때 여론의 관심을 '태안 기름유출 사건'으로 돌린 것도 삼성중공업이었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뼈저린 아픔이 이 대통령에겐 결정적 기로에서 한숨을 돌릴 여유를 주곤 했다. 기이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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