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작은손, 거대한 사막을 밀어내다

내몽골(중국)=황국상 기자 | 2008.04.21 12:33

[쿨머니, 지구를 지켜라]<1-1>황사의 고향, 중국 쿠부치의 사막화 방지 현장

편집자주 | 올해는 유엔(UN)이 정한 '행성 지구의 해'다. 사막화와 온난화, 인간이 일으킨 오염으로 병들어가는 지구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인간의 손길은 지구를 살려내기도 한다. 머니투데이는 '지구의 해'를 맞아 지구를 지키는 아시아 시민, 기업, 정부의 노력을 전한다.

↑ 중국 네이멍구 쿠부치 사막의 전경. 길이 400km, 폭 30km로 길게
뻗어 있는 이 사막에는 연중 100~300mm의 비가 내린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눈길 닿는 곳은 모두 모래뿐이다. 이곳은 이틀이 멀다 하고 돌풍이 퍼올린 누런 모래먼지에 땅도, 하늘도 파묻힌다.

나무는 뵈지 않는다. 무릎 높이의 풀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을 뿐이다. 운 좋게 뿌리를 내렸을 법한 갈대도 손을 대니 바스락 부서져내린다.

200여년 전 사슴이 가득 뛰어놀았다는 이 곳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북쪽 '쿠부치(庫布齊)' 사막이다.

'쿠부치'란 몽골어로 활시위를 뜻한다. 중국 길이 400km, 폭 30km의 모래 언덕이 활시위처럼 구부러져 있다.

이 곳의 모래는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들처럼 편서풍을 타고 베이징, 톈진 등 중국의 주요 도시와 한국의 하늘을 뒤덮는다.

중국에서 쿠부치처럼 황막화(黃漠化)된 지역은 해마다 서울의 5배(3430㎢)만큼 넓어지고 있다. 현재 267만2000㎢. 중국의 27.8%, 한반도의 12.1배에 이르는 땅이 풀 몇 포기가 자라기도 어려운 사막이나 황무지다.

↑ KTF 사막원정대
참가자들이 포플러(위·중간)와
소나무(아래)를 심고 있다.
스스로 커지는 사막의 거대한 힘 앞에서, 지난 4월 3일 쿠부치에 도착한 'KTF 사막원정대' 일행은 모래바람보다 짙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일행은 나무를 심으러 한국에서 쿠부치까지 비행기, 기차, 버스를 갈아타고 16시간 동안 먼 길을 온 터였다.

'외국인 20여명이 와서 나무 몇백 그루를 심는다고 이 거대한 자연의 힘을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쿠부치 언저리의 작은 마을, '언거베이(恩格貝)'에서 인간의 작은 손은 사막의 거대한 힘을 밀어내고 있었다. 18년 전 한 일본인의 손에서 시작된 기적은 지금도 이어진다.

◇운 좋은 땅 '언거베이', 사막을 몰아내다= 네이멍구 제2의 도시인 바오터우(包頭)에서 자동차로 2시간. 끝 없을 듯한 사막을 달려오던 일행 앞에 갑자기 믿기지 않을 만치 푸른 숲이 나타났다.

포플러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곳은 '언거베이' 마을. 20여년 전만 해도 중국 사막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던 곳이다.

이제 언거베이는 '중국 최대의 인공 오아시스', '사막과 전쟁에서 승리한 곳'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000여명의 주민들은 '중국 최대의 인공 오아시스'를 넓혀 가고 있다.

언거베이 주민들이 사막과 싸울 힘을 준 건 일본에서 건너온 한 원예학자였다. 도오야마 마사히데(遠山正瑛) 돗토리대학 교수는 1989년 83세 고령으로 언거베이 등 중국의 사막을 방문,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0년 일본에 돌아가 '일본사막녹화실천협회'를 결성한 이래, 그는 '나무심기 관광'을 사업화했다. 1995년엔 쿠부치에 은사시나무 100만 그루를 심었다. 2003년까지 그와 일본인, 중국인들이 심은 나무는 340만 그루에 이른다.

인간이 심은 나무들에 밀려, 사막은 이전보다 10km 가량 뒷걸음질쳤다. 심지어 황사도 밀려났다. 인간의 힘이 사막화와 황사를 물리치고 있는 것이다.

최효 강릉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예전엔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일어난 모래가 우리나라에까지 날아왔지만 지금은 거의 안 온다"며 "황사 발원지에 심은 나무가 모래의 이동을 저지하고 사막의 확대를 막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 쿠부치 사막 인근 언거베이 마을에서 바라본 풍경. 초원 저 너머로
모래 언덕만 가득한 쿠부치 사막의 모습이 바로 보인다.

중국관광공사 언거베이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치뤼(30)씨는 모래로만 뒤덮힌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곳도 불과 20년 전에는 저곳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포플러 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요. 그래봐야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경우는 20%도 안됩니다. 심어도 바람에 뿌리가 뽑히거나 물이 없어 말라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지만 계속 나무를 심어왔어요.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이만큼 사막을 밀어낸 겁니다."

예전에는 100명도 못 미쳤던 주민수는 사막이 물러나면서 1000여 명으로 늘었다. 모래 바람을 피해 떠났던 사람들은 푸른 숲을 찾아 다시 모여들었다.

◇KTF 사막원정대의 '희망의 삽질'=사막을 밀어낸 현지 주민과 일본인들의 행렬에 한국인들도 동참했다.


넓게 펼쳐진 곳(중간),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사막지대(아래)까지
확연한 식생대 구분이 인상적이다.
이 모든 지역이 차로 10분
내외 거리에 놓여 있다.">↑ 언거베이 지역의 풍경.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지역(위)과 초원만
넓게 펼쳐진 곳(중간),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사막지대(아래)까지
확연한 식생대 구분이 인상적이다.
이 모든 지역이 차로 10분
내외 거리에 놓여 있다.
SK는 올해까지 7년째 쿠부치 사막에서 조림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중미래의숲'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나무 심기를 시작한 대한항공은 2011년까지 총 180만 그루를 심겠다고 밝혔다.

KTF는 4월 3일 첫 사막원정대를 보냈다. 국내 자원봉사자와 KTF 직원으로 구성된 사막원정대는 이날 언거베이 주민들과 함께 소나무 200여 그루, 포플러 나무 50여 그루 등 총 250그루를 심었다.

삽질에 익숙치 않은 원정대원들의 손바닥엔 금새 물집이 잡혔다. 내리쬐는 햇볕과 뜨거운 바람 속에 다들 지쳐갈 즈음, 누군가가 "우리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누군가가 노래하듯 말했다. "삽질~ 삽질하고 있네." 또 다른 누군가가 되받아쳤다. "삽질은 삽질인데 땅을 살리는 거니까 희망의 삽질이지."

피곤한 다리를 끌고 버스로 돌아가던 중 자원봉사자 김지나(30) 씨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황량한 땅이 늘어난 게 무분별한 개발 탓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요. 앞으로도 환경을 잘 보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 죽어도 다른 나무를 살리는 나무=사람의 병도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듯, 자연 또한 그러하다. 이미 사막이 된 지역을 다시 살리는 건 사막화를 막는 것보다 어렵다.

일행이 탄 버스가 언거베이를 벗어나자, 나무의 행렬이 뚝 끊겼다. 가시투성이 도깨비풀들만 발목 혹은 무릎 높이로 깔려 있었다. 풀밭 너머로 누런 사막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 세 부분의 경계가 면도날로 잘라낸 듯 확연하게 구분됐다.

↑ 사막의 확장을 막기 위해 언거베이 지역에서는 우선 포플러 나무를
사막에 심는다(왼쪽 아래). 하지만 모든 포플러 나무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15~20%의 생존률만 보일 뿐이며
대부분은 바람에 뿌리뽑히거나 햇볕에 말라 죽는다(왼쪽 아래). 한편
초원에 내다심는 소나무는 생존률이 80% 정도로 포플러보다 훨씬
높다. 언거베이 지역은 자체 소나무 묘목장(오른쪽)을 운영, 사막과의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치뤼씨는 "쿠부치 사막 곳곳에서 방풍림(防風林) 조성 사업이 계속되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후퇴하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심은 나무와 풀들이 살아남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설사 말라 죽을 지라도 나무는 계속 심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 번 나무를 심었던 땅은 조금이라도 토질이 좋아진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나무를 심다보면 그 중 몇몇은 어떻게든 뿌리를 내린다. 살아남는다.

나무가 뿌리 내린 곳에는 풀씨가 내려 앉는다. 나지막한 풀들이 모래 위에 뒤덮일 때쯤, 사막은 그만큼 물러난다. 인간은 나무를 심는다. 또 죽을 지라도 그것이 언젠가는 다른 나무를 살릴 희망의 나무란 걸, 인간은 안다.

↑ 이달 초 중국 네이멍구 쿠부치사막 인근 언거베이 지역에서 250그루의
'포플러·소나무 심기' 행사에 참가했던 KTF 사막원정대 대원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노동교화형은 커녕…'신유빈과 셀카' 북한 탁구 선수들 '깜짝근황'
  2. 2 '황재균과 이혼설' 지연, 결혼반지 뺐다…3개월 만에 유튜브 복귀
  3. 3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4. 4 "당신 아내랑 불륜"…4년치 증거 넘긴 상간남, 왜?
  5. 5 1년 전 문 닫은 동물원서 사육사 시신 발견…옆엔 냄비와 옷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