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논란, 과거 족쇄 풀고 미래로 가자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08.04.21 09:15

[이제는 경제다]레드카드만 뽑지 말고 경기규칙부터 바꿔라

"일이 꼬이려면 악재가 겹친다. 경제상황이 어디 믿을 게 하나 없는데, 삼성특검이다 뭐다 해서 그나마 뛰고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 발목까지 6개월씩이나 잡아 묶고 있다. 다른 나라는 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고 야단인데…."

경제계 한 인사의 푸념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국내 1위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을 6개월 멈춰서게 할 정도로 한가한 경제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모든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데다 미국의 경기침체와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 등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곳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이다.

◇기업 처벌보다 시스템부터 바꾸자=지난해 10월에 시작된 삼성 비자금 의혹 논란은 172일 간의 공방으로 일단락됐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번을 계기로 삼성이 새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느냐, 아니면 미완의 숙제로 남아 계속 삼성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인가 갈림길에 놓여있다.

조준웅 특검은 지난 17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번 사건을 '재벌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과 법적ㆍ제도적 장치간 괴리 또는 부조화'로 규정했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차명계좌를 보유한 이유로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피치 못한 조치라고 말했다. 50%의 상속세를 내고 나면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차명으로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고민은 이 회장뿐만 아니라 국내 대다수 기업 오너의 고민이기도 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한 상속세 폐지 요구에 "상속세는 폐지보다는 합리적으로 내도록 해 민간 경제활동을 원활히 하도록 하겠다"며 상속세 완화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최근 삼성사태 정책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30억원 초과분에 대해 50%를 물리도록 돼 있어 대기업 오너들은 상속 재산의 절반을 국가에 내야 한다"며 "삼성문제의 본질은 기업가의 재산권을 위협하는 데서 빚어진 것"이라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과도하고 비합리적인 상속세법 체계가 국내 기업들을 불법ㆍ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사유재산권을 최대한 보호해 법 테두리 내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오너들이 경영권을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세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실정법을 어기게 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되…불가피성도 감안=전세계적으로 무기나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공사에는 관행적인 리베이트가 암암리에 존재한다. 재계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국가적 공사나 수십억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에선 리베이트가 전달되지 않고 수주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관행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자금은 회계 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비자금을 조성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업 관행이 법적으로 논란이 된 일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의 세계적 컴퓨터회사 애플의 경우 2006년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하면서 우수인재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보장하기 위해 백데이팅(Back Dating)이라는 수법을 썼다.

애플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간 임직원에게 지급한 스톡옵션 일부에서 스톡옵션 지급일자를 조작함으로써 주식 매입 가격을 실제 부여시점보다 낮추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는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우수한 인력확보를 위해 취해온 관행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가 조사한 결과 1996년부터 2005년까지 9년간 미국에서 스톡옵션을 부여한 7774개 기업 중 29% 넘는 2270개 기업에서 백데이팅을 관행적으로 해왔다. 기업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행한 것이 법적 잣대로 볼 때는 불법이 된 사례다.

또 E*트레이드의 경우 이사회에서 자사 CEO에게 1500만달러의 대출금을 면제해주는 등 거액의 저금리 대출을 회사 경영자들에게 주던 관행이 문제가 됐다. 이들에 대한 제재가 있긴 했지만 관행에 대해 처벌 중심보다는 이후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이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경천 중앙대 상경학부 교수는 "삼성특검이 발표한 문제는 국내 많은 기업도 안고 있는 공통사항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한 기업에 대한 처벌보다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시스템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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