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말로만 투자, 관망하는 까닭은

머니투데이 이진우 기자 | 2008.04.18 15:57

[이제는 경제다]기업가 기 꺾는 사회.."뭐가 바뀌었나" 회의론

하이닉스반도체는 올해 계획했던 3조6000억원의 투자액 중 최대 1조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D램 가격의 하락 등 전세계적인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와 에쓰오일 등 정유업계도 올들어 고유가에다 국제 원자재가마저 급등하자 기존 고도화 및 석유화학 설비 증설계획을 잇따라 연기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연초부터 특검의 회오리에 휘말렸던 삼성그룹은 아예 지금까지 투자와 채용계획조차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전자와 반도체, LCD 등 주요 제품의 장비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어 왔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좀처럼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30대그룹의 올 투자액이 92조8000억원으로 전년도 실적(75조5000억원)보다 23% 늘어날 것이란 전경련의 희망 섞인 조사결과와 산업현장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기업들이 투자할 '실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증권선물거래소가 12월 결산 54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은 62조7447억원으로 1년 동안 19.4%(10조2053억원)나 증가했다. 투자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내놓을 돈이 10조원 이상 늘었다는 얘기다.

새 정부 출범 후 대통령이 자다가도 기업인들의 전화를 받겠다고 공언하고, 공항엔 기업인 전용 귀빈실을 만들어 기업인 기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데도 기업들은 여전히 돈 줄을 풀지 않고 관망만 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녹록치 않은 국내외 경영환경에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삼성특검 등의 연이은 정치·사회적 이벤트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아직까지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에 이은 원자재가 상승 등 대외여건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내수부진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목표인 6% 성장이 어렵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심리적으로 아주 민감한 장사꾼이다. 쌓아 놓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남는게 없으면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기업들이 작년보다 늘어난 투자계획을 잡아 놓고도 집행을 늦추는 것은 시장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새 정부의 친기업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반증도 된다.

황인학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지난 정권에서 규제 등의 문제로 투자를 계획했다 보류했거나 포기한 적이 있다는 기업이 30∼40%에 달했다"고 말했다. 핵심규제 완화 등 여건만 조성이 되면 투자하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돈을 풀 곳들이 많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제시한 민심도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 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쟁으로 얼룩진 정치와 기업과 기업인을 개혁 대상으로 삼는 국민정서법 등이 경제 활력을 짓누르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기업들이 침체된 투자에 물꼬를 트고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줘야 한다"며 "규제개혁을 서두르면서 내수와 기업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넘어 '비즈니스 프랜들리 사회'가 확실하게 구축돼야 관망하는 기업들을 투자의 대열에 끌어 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7일, 99일간의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를 지켜보던 A대기업의 고위임원은 "잘잘못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 경영계획 조차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에 빠진다"며 "이번 삼성사태를 계기로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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