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노빠'의 두번째 커밍아웃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08.04.18 08:11
총선 끝나고 얼마 뒤 모 중소기업 사장님과 저녁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혼자말처럼 고백했다.

"참 허무하네요. 제가 청와대 2년 넘게 출입했잖아요. 이번에 청와대 있던 사람들 총선 나가 다 떨어졌어요."

사장님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참, 나. 권 기자님, 와 이라노. '노(盧)색'을 벗어야 된다고 제가 언제부터 말했습니까. 아직도 '노색'을 못 벗었나."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냈던 사람은 아예 공천도 못 받았고 민정수석을 지냈던 사람과 대변인을 지냈던 사람은 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던 많은 통합민주당의 중진 의원들은 허무하게 낙선했고 노 전 대통령이 애정을 기울여 만들었던 열린우리당은 이제 통합민주당에서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정치색으로 따지자면 무색, 무취, 무관심을 표방해왔던 내가, 이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다니, 스스로 '노색'에 물들었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노색'이 들었었나 보다. 그리하여 나는 총선 직후 혼자서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노빠'였노라고….

 노빠니 낙선한 노무현 측근들에게 위로 전화를 해야 했다. 노빠가 아니라 해도 청와대서 싸우고 화해하고 함께 한 세월을 보냈던 사람들이니 위로 전화는 인지상정이다.

"이번에 상심이 크시죠?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이렇게도 말했고 "선배, 4년 뒤엔 제가 선대위에 들어가 도와 드릴께요" 이렇게 호기있게 말하기도 했다. 다들 고맙다, 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총선 끝나고 5일째 되는 날인 지난 14일 노 전 대통령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띈 채 손녀를 태운 유모차를 매달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진이 공개됐다. 그 사진은 대히트였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이 허탈했다. "그는 왜 지금의 정치 현실에 대해 아무 말이 없을까." "그는 왜 하필 자신의 수족 같은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진 총선 직후에 이런 사진을 공개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졌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좌했던 모 인사와 저녁을 먹었다. 나는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요, 시골 가서 평범한 촌로처럼 살아서 인기가 올라가는진 몰라도요, 전요, 노 전 대통령이 희화화되는 거 같아 정말 싫어요. 노무현 정치는 어디 갔나요? 이제 우리에겐 그냥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만 남은 건가요?"

 그가 내 비난 섞인 질문에 대답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답했다 해도 복잡한 내 가슴을 펑 뚫어주는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대답의 요지는 기억했을 것이다. 아니,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기분이라도 상쾌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번 커밍아웃을 결심한다. 이제 노빠는 오늘로 그만! 시골 할아버지의 팬이 되기엔 반반하고 몸 좋은 남자 배우들이 넘쳐 나므로. 촌로를 바라보며 대역전의 정치 드라마를 쓸쓸히 떠올리는 감상에 빠지기는 싫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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