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사업자 리스크 관리에 '맞춤 수단'

머니위크 황숙혜 기자 | 2008.04.29 08:38

[머니위크 커버스토리]

# 경기도에서 10년 가까이 양계장을 운영해 온 조류랑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마의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잊을만 하면 다시 고개를 드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밤잠을 편히 잘 수 없기 때문.

AI가 전국의 양계장을 강타할 때마다 닭고기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급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키우는 닭의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고심 끝에 조류랑 씨가 한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냈으니 다름 아닌 장외 파생상품 거래였다. 조류랑 씨는 국내 A증권사와 현재 한 마리에 100원 하는 닭의 시가가 10% 이상 떨어질 경우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구조의 장외 파생상품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반면 닭의 시가가 오를 경우 10% 이상 상승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권사가 이득을 취하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켯다.

조류랑 씨는 가격 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헤지하는 동시에 가격 상승에 대한 이득을 포기함으로써 증권사에 대한 수수료를 낮출 수 있었다. 닭의 시가가 10% 이상 오를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판단, 불투명한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것보다 수수료 비용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계산이었다.

사료 값을 포함해 양계장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총비용과 닭을 팔아 취하는 이익 등을 감안할 때 10% 이내의 가격 하락이라면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조류랑 씨는 확신했다.

#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200여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는 배나온 씨와 서울에서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구워라 씨. 돼지 값이 오르면 배나온 씨가 웃는 반면 구워라 씨는 울상이 된다. 반대로 돼지 값이 떨어지면 농장 주인과 식당 주인의 입장 역시 정반대로 바뀐다.

날씨의 변덕에 따라 우산 장수와 부채 장수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처럼 돼지가격이 움직이면 한 사람의 기쁨이 곧 다른 사람의 아픔이 되는 셈이다.

묘책을 찾던 농장 주인 배나온 씨와 삼겹살 식당 주인 구워라 씨는 장외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한 이후로 크게 울상 짓는 일이 없어졌다.

두 사람은 국내 B증권사를 통해 돼지 가격이 10% 이상 떨어져 농장이 입는 타격을 삼겹살 식당이 보전해주고 10% 이상 올라 삽겹살 식당이 떠안아야 하는 비용 부담을 농장의 이익으로 채우는 구조의 장외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돼지 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대규모 이익을 온전하게 취할 수는 없지만 큰 손실 역시 회피할 수 있게 된 것.

거래를 중개한 B증권사는 어느 한 쪽 방향의 가격 움직임에 대해 무한대의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 하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큰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으면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 개인 사업자들 리스크 헤지 기회 열려

내년 2월로 예정된 자본시장법통합법 시행에 따라 전문 투자자로 제한된 장외 파생상품 거래가 개인에게도 허용된다. 다만 투기거래가 아닌 헤지 목적이 있을 때만 거래할 수 있다.


변제호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과 사무관은 "일반 투자자의 금융 상품 거래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된데 따라 전문 투자자로 제한했던 장외 파생상품 거래를 개인에게도 허용하기로 했다"며 "리스크 헤지가 필요한 개인 사업자들이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형화 되지 않는 장외 파생상품의 특성상 이밖에 다른 제한은 없다. 기초자산 선정과 상품의 손익 구조, 수수료 등 거래가 이뤄지는 전반적인 조건은 리스크를 헤지하고 싶은 개인과 장외 파생상품 거래 인가를 받은 금융회사에 맡겨진다.

헤지의 대상은 농축산물의 가격 뿐 아니라 중국에서 의류업체를 경영하는 사업가에게 커다란 리스크가 되는 중국 근로자 임금도 포함될 수 있다.

변제호 사무관은 "기초자산에는 모든 자산이 포함될 수 있고 거래 주체의 이해와 합의에 따라 이익 구조와 수수료도 자율적으로 결정된다"며 "일반인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보다 실수요자에 대해 필요한 금융상품 거래를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 풀어야 할 과제는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일반인의 장외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한다 해도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듬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얘기다.

가장 중차대한 문제는 신용 평가다. 가령, 배나온 씨와 구워라 씨의 경우처럼 서로 반대 방향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거래를 맺었을 때 어느 한 쪽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돼지 가격이 폭등한 데 따라 구워라 씨의 음식점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는데 농장에서 기른 돼지를 팔아 이익을 챙긴 배나온 씨가 상대편의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증권사가 책임을 떠안게 될 수도 있고 사전에 담보를 잡아뒀다 해도 계약을 이행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실수요를 가진 모든 개인이 헤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기초자산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고객이 헤지하려고 하는 기초자산에 대해 반대 포지션을 잡기 힘들다면 증권사 측에서 상품 거래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파생상품 책임자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는 거래 상대방의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증권사가 개인 사업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헤지 수단이 없는 자산에 대해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만을 목적으로 베팅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거래 규모를 갖춘 개인이 은행의 PB 형태로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한다"며 "은행 계좌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은행의 신용을 토대로 거래가 이뤄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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