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조형성, 힘을 담아내야

박정수 연일아트 대표 | 2008.04.23 09:34

[머니위크]미술품 투자와 감상법 / 서예

국내 경매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77년에 쓴 한문 휘호 '국민총화 총화전진(國民總和 總和前進)'이 6200만원에 낙찰된 일이 있었고 2007년 3월 경매에서는 한글 휘호가 1억1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하였다.

근래의 글씨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2007년 7월 경매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거문고와 사람이 함께 울린다’는 의미의 동인음관(桐人吟館)이라 써진 휘호가 1억8000만원에 낙찰되었다.

글씨가 돈이 된다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동양권에서의 서예는 한자를 기본으로 한다. 한자의 생성원리가 그림문자이기 때문에 조형성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글씨 자체가 추상성을 가지고 있어 그것에 담겨지는 내용과 조형미가 함께한다. 추사 김정희의 서체가 유명한 것은 담겨진 내용에 따라 書의 조형미가 항상 새롭게 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쓰는 장소와 시간 글의 내용에 따라 서체가 독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서예는 서양의 캘리그라피(Calligraphy)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 우리나라의 서예(書藝)는 서양에서 말하는 캘리그라피의 예쁘거나 독특한 외형만을 말하지 않는다. 서예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서예가를 서가(書家) 혹은 서화가로 불렀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미술전람회에 서예부분을 공모하면서 독립된 장르로 형성되었다. 서예라는 말은 일본인이 사용하던 서도(書道)와 대별되기 위해 ‘예(藝)’자를 붙임으로 해서 독립된 장르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書는 곧 畵이며, 畵는 곧 書’라는 전통적 상황에 따라 서예는 미술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서예를 감상할 때 글씨의 조형성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글 내용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남의 글을 인용하여 글씨를 쓰면 서(書)에 대한 독창성이 문제가 되고 글의 독창성을 중시하게 되면 미술이 아니라 문학에 가깝게 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비싼 이유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글씨체의 독창성과 시국의 문제가 글의 내용으로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된다.

미술가들 중에서 서예가들의 고민은 여기에 많이 있는 듯하다. 서예는 글씨를 쓰는 것부터 예술이 시작된다. 글을 창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에 대한 의미와 새로운 조형성을 구성해 내야 한다. 붓으로 써진 글에는 힘이 있다. 여기서 ‘힘’이라고 하는 것은 글 내용이 기상이나 용기를 말한다면 힘찬 붓질일 것이며 연애편지의 것이라면 소담하고 아련함의 것이다.

글자는 추상적 형태에 글과 글씨를 통해 표현하는 종이 위의 공간 예술이다. 자연이나 생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화 될 수 없는 문자를 시효적절하게 특정화 시키는 일인 것이다.

이 서예 작품은 의암(義巖) 김정호(金正昊)의 것으로 仁者不違 義以要名(인자불위 이의요명) ‘어질다는 것은 어기지 않는 것이며, 義로써 명예를 요한다’는 후한서(後漢書)의 한구이다.
김정호, 仁者不違 義以要名, 서예, 70x45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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