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깊어진 펀드매니저 고민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 2008.04.04 17:01

금융디커플링 돼도 실물경제위축 모면 어려워

코스피지수가 사흘 연속 상승했다. 지난달 18일 하락추세에서 탈피한 이후 보름간 거침없는 상승세를 구가하고 있다. 14거래일 동안 두번의 하락 반전도 있었지만 -0.2%(3월27일)와 -0.1%(4월1일)의 미미한 숨고르기가 있었을 뿐이다.

비록 이날 지수 상승폭이 0.16%에 그쳤지만 5일 이동평균선을 타고 강력하게 오르는 모습에 어떠한 흔들림도 없는 상태다. 주봉으로 3주째 강한 양봉이 나타났고 월봉 기준으로도 5MA를 돌파하면서 추세 상승을 의심할 여지조차 배제하고 있다.

이날 주도주는 철강금속과 조선주 등 중국 관련주였다. 시총 2위와 3위인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은 사흘 연속 상승하며 장을 이끌었다. 포스코는 사흘간 10.47%, 현대중공업은 사흘간 8.3% 올랐다. 삼성중공업은 무려 11일 연속 상승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날 6.88% 오르며 시총 상위 100종목 중 최고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그러나 전기전자와 은행주는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도체 업종과 무관한 LG전자가 1.87% 올랐을 뿐 삼성전자하이닉스가 각각 1.88%와 0.88% 하락했다.
신한지주와 국민은행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컸다. 신한지주는 3.19%, 국민은행은 2.64% 떨어졌다.

장중 상한가까지 도달하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신흥증권을 포함, 증권업종(+1.83%)과 보험업종(+2.12%)이 올랐지만 금융업종에서 은행업종(-1.46%)은 탈락하는 모습이었다.
현대차는 2.98% 하락하며 이틀째 꼬리를 내렸다.

이는 주도주가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을 의미한다. 미리 오른 종목이 보합권을 유지하거나 제한적인 낙폭을 보이는 가운데 신규 주도주가 부상한다면 매기 확산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2∼3일 오른 뒤 하락폭이 커지고 다른 업종으로 시세가 옮겨간다는 것은 '치고 빠지기'의 전형적인 수법에 불과할 수 있다.

현재 운용사(투신권)는 보유 현금을 거의 소진한 상태다. 펀드에 신규 자금 유입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주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보수적이었던 태도를 벗고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매수여력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상승 불씨가 당겨진 업종과 종목은 털어내고 새롭게 급등할 수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순환매가 돌면서 장세가 탄탄하게 오른다는 보장이 있다면 운용사 입장에서 급할 이유는 없다.그러나 펀드매니저 내부에서조차 최근의 주가 급등을 반신반의하기 때문에 단기 차익을 발빠르게 확정해 나가면서 추락한 펀드 수익률을 올리느라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주식을 운용하는 쪽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가가 상승 탄력을 잃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주가 반등시 펀드 가입자의 환매 요청이 불보듯 뻔한 상태에서 주가가 다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뒤늦은 환매가 확산될 우려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때문에 주가가 120일 이평선을 돌파하면서 1900선으로 추가 상승할 모멘텀을 찾는 데 혈안이다.

당장은 외국인의 현·선물 동시 순매수 행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 매수차익 거래를 통해 외국인 방향에 동참하고 있다.

이날 미국 3월 고용지표가 양호하게 나와서 미증시가 또 한번의 대형 양봉을 만들어 준다면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질 것이고 펀드 가입자의 환매 시점도 늦춰질 수 있는 일이다.

주가가 어떻게든 1800선, 1900선을 넘어서 다시 '2000대 주가시대'를 열 수 있다면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주가 폭락이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결론을 내고 여전히 장기투자가 힘을 얻게 될 일이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다. 미 연준리(FRB)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펼치고 있는 유동성 확대조치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불길을 잡는다고 해도 잿더미까지 원상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펀더멘털적 분석에서 자유롭지 않다.

씨티은행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GDP)을 0.8%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술 더 떠 0.5%로 낮춰 잡았다. 미국 성장엔진이 스톱되는 상태에서 브릭스(BRICs)나 이머징국가가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면 완벽한 디커플링이다.
그러나 금융측면에서 디커플링이 가능하더라도 실물부분에서 디커플링은 예상하기 어려운 가정이다.

만일 미국의 실물경제가 죽을 쑤는 상황에서도 지구촌 경제가 괜찮게 돌아간다면 미국이라는 수퍼파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증이 된다. 미국이 전세계를 좌우하는 국가가 아니라 유럽(EU) 및 일본과 큰 차이가 없는 한 지역의 맹주에 지나지 않는다면 팍스어메리카(Pax America)라는 거대한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기도 결코 좋지 않다. 환율이 좀 올라서 수출주가 기를 펴고 있지만 서비스와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1분기 들어 수출효과를 제외할 경우 내수 성장세는 이미 둔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내수 둔화가 단기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추세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JP모간의 베어스턴스 인수로 금융위기가 끝났다고 해도 실물경제 위기는 아직 제대로 감지조차 못하고 있는 일이다.
풀린 유동성이 낙폭이 큰 주가를 띄울 수는 있어도 기업이익까지 제고시킬 수는 없다. 성장이 둔화되는 것을 감내한다고 해도 어닝이 사라지고 손실 또는 로스(Loss)라는 단어가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등장하는 횟수가 많아지게 된다면 주식은 연초보다도 더욱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이 주가 1800선을 목전에 두고 자산운용사 펀드매너저들이 고민하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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