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씨티의 실험'이 준 교훈

유일한 기자, 김경환 기자 | 2008.04.04 15:07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too big to fail). 씨티그룹이 트래블러스와 10년전 합병했을 때 들었던 평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손실로 내리막을 걷고 있는 지금도 씨티를 두고 유사한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차원은 다르다.

합병으로 상업은행이었던 씨티코프는 트래블러스의 투자은행, 보험, 증권 사업부를 한꺼번에 얻었다. 1933년 제정된 '글래스-스티걸법'에 의해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소유가 엄격히 제한돼 있었던 금기를 깬 것이다. 씨티는 당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합병을 통해 법을 허물었고 급기야 황금 포트폴리오를 갖게됐다. 너무 크다는 말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했을 정도로 크다는 의미었다. 이후 씨티의 자산은 세계 1위에 올랐다.

요즘 씨티가 받고 있는 '크다'는 평가는 대마불사(大馬不死)에서 얘기하는 것에 가깝다. 워낙 덩치가 큰 씨티가 망가지면 미국의 금융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래저래 너무 커서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씨티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합병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가장 먼저 했다. 이후 금융산업내 인수 합병(M&A)이 봇물을 이뤘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간 영역 허물기는 '겸업'이라는 말로 포장돼 인기를 끌었다.

씨티의 영역 확장은 거침이 없었다. 합병 1년뒤인 1999년 일본 닛코증권, 2000년 유럽 쉬로더투자은행사업부, 폴란드 핸들로위 은행, 2001년 멕시코 바나멕스 등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은행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는 전세계 금융그룹이 예외없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목표다. 다양한 상품을 전시해 어떤 성향의 고객이 오더라도 만족스러운 접대를 하고 이를 통해 경쟁에서 이긴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 백화점식 포트폴리오가 이론적으로 최선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않다.

승승장구하던 씨티는 2004년부터 보험사업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2004년 손해보헙사인트래블러스 프로퍼티 캐주얼티를 시작으로 2005년1월에는 생명보험 및 연금회사인 트레블러스 라이프&어뉴어티를 메트라이프에 매각했다.

M&A에서 오는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게 매각의 이유였다. 문화뿐 아니라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시너지를 내지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랐다.


씨티는 이후 투자은행 사업부에서 모기지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보험 사업 철수로 위축된 사세를 투자은행에서 보충한다는 전략이었다. 찰스 프린스 전 회장 주도로 채권, 특히 구조화채권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해 모기지담보증권(MBS)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현 최고경영자(CEO)인 비크람 팬디트도 투자은행 부문 대표 출신이다.
씨티가 거느린 7개 자산유동화전문회사(SIV)의 순자산가치만 한때 650억달러에 달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대거 포함된 자산이었다. 월가 은행중 가장 많은 규모였다. 지금 이 SIV의 자산 가치는 폭락했다. SIV는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전락했다.

상업은행이 본업이던 씨티는 결국 투자은행 부문에서도 실패하고 만 셈이다.

미 월가는 한마디로 실험과 도전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월가가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며 강대국 미국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도 이같은 실험 때문이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있었다.

씨티의 실험은 실패의 사례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겸업을 최선으로 여긴 월가의 실험이 조직과 시스템의 미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모기지 사업의 위험을 알았지만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위험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나아가 막대한 부채를 떠안으면서까지 모기지투자를 늘렸다. 주택 가격 침체로 인한 모기지 채권 가격 하락은 통제권을 벗어났고 이는 씨티에게 씻을 수 없는 손실로 다가왔다. 실수치곤 너무 뼈아팠다.

때문에 겸업 자체보다는 시스템과 사람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랑스의 소시에떼 제네랄(SG) 은행이 지난 1월 제롬 케르비엘이라는 단 한명의 선물투자자 통제에 실패해 49억유로(72억달러)라는 역사상 최악의 금융사기 손실을 입은 게 이를 증명한다.

위험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골드만삭스는 이번 신용경색에서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사세를 확장했다.

한 금융전문가는 "황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월가 은행들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며 "그러나 겸업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것보다 그 일을 어떻게 잘 하느냐, 다시말해 인력과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노동교화형은 커녕…'신유빈과 셀카' 북한 탁구 선수들 '깜짝근황'
  2. 2 "바닥엔 바퀴벌레 수천마리…죽은 개들 쏟아져" 가정집서 무슨 일이
  3. 3 '황재균과 이혼설' 지연, 결혼반지 뺐다…3개월 만에 유튜브 복귀
  4. 4 '日 노벨상 산실' 수석과학자…'다 버리고' 한국행 택한 까닭은
  5. 5 "곽튜브가 친구 물건 훔쳐" 학폭 이유 반전(?)…동창 폭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