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10년 씨티의 명암

유일한 기자, 김경환 기자 | 2008.04.04 11:56
10년전인 1998년 4월 6일 씨티코프와 트레블러스 그룹간의 합병으로 세계 최대 금융기관인 씨티그룹이 출범했다. 200년 가까운 정통 금융역사를 자랑하던 씨티와 보험, 증권업을 주종으로 하던 이질적 트레블러스간의 결합 10년은 내용과 규모면에서 현재 우리가 논의하는 '금산분리책'과 '메가뱅크' 논란과 오버랩돼 주목된다. 일단 씨티그룹 '결혼'은 축복보다는 구설수가 더 나오는 불행이라는 지적이 압도적이다. 한 당사자였던 존 리드 전 씨티코프 회장은 아예 "합병은 슬픈 이야기(sad story)로 판명났다"고 단언했다.
합병으로부터 지난 10년의 역사를 더듬으며 우리에게 반면교사는 뭔 지 짚어본다.

10년전인 1998년 4월6일 아침 7시41분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 선언으로 대공황 이후 은행의 보험 소유를 제한하던 절대 권위의 '글래스-스티걸 법'은 정면으로 도전받았다. 씨티의 로비 등 우여곡절 끝에 이 법은 마침내 종언을 고했고 씨티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서부터 보험, 증권을 아우르는 절대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한번에 날려버린 시장의 승리"라는 환호가 잇따랐다. 합병을 뒤늦게 승인한 꼴이 된 그람-리치-브라일리(GLB)법은 다음해인 1999년 11월 시행됐다. 아예 씨티그룹 구제법안이라는 비아냥도 들렸지만 정부, 의회에 앞서 리드한 시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씨티그룹 10년은 결코 장밋빛 인생이 아니었다.
지난해 터진 서브프라임 신용경색은 치명타를 던졌다. 서브프라임 손실로 상각한 자산만 240억달러에 이른다. 세계 3위 안에 드는 기록이다.
찰스 프린스 회장이 사임했으며 신임 비크람 판디트 최고경영자(CEO)는 2000억달러에 이르는 자산매각과 회사분할을 비롯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황이다.

금융시장 개편과 관련 다시 고개를 든 메가뱅크 방안은 한마디로 몸집을 키워 은행들의 대외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10년전 합병으로 자산이 세계 최대로 불어난 씨티는 결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인(big)이었다는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씨티가 합병을 통해 보험과 증권산업에 진출한 것은 금산분리 완화와는 연관이 적다. 그러나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영역이 다른 새로운 식구(계열사)의 증가를 의미한다는 공통점은 있다. 규제완화를 통해 재벌이 은행이라는 자식들을 여럿 거느리게 됐다고 해서 최선은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씨티그룹 출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존 리드 당시 씨티코프 최고경영자(CEO)는 합병 10주년을 맞아 "합병은 실수였다"고 회고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너무 늦은 후회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리드의 '실수' 발언은 월가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 적지않은 파문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투자, 겸업화에 대한 당국의 규제 강화는 한층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합병으로 탄생한 새로운 씨티는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규제가 뒷받침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너무 좋아서 망하지 않는 은행'이 되는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규제가 없는 영역 허물기는 금융시장 및 경제시스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평가였다.

FT는 10년이 지난 지금 씨티의 합병은 '파우스트의 거래'(물욕을 위해 규제 원칙 등 포기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가치를 파는 거래)로 드러났다며 시장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은행 규제를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한국에서는 금산분리 완화로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산업자본이 출자한 사모펀드(PEF)가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PEF는 투기자본이 아니라 전략적인 투자를 하는 곳만 은행 소유가 허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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