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창업 길라잡이 나선 '젊은 인생'

머니투데이 이정흔 기자 | 2008.04.14 13:15

[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 전경련 기업경영자문봉사단 권동열씨

은퇴 후를 준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10시나 돼서야 퇴근하길 반복하는 생활.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시절이었기에 '은퇴'라는 말은 그저 멀고 먼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남의 나라 얘기가 현실이 된 건 6년 전이었다. 퍼시스의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권동열 씨는 2002년 은퇴를 맞이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의 일원(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전직 CEO들을 주축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봉사활동으로 그중 그가 맡은 자문분야는 창업분야다. 특히 실버창업과 관련된 자문활동이 많다. 은퇴자들과 밀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 때문일까. 그는 은퇴 한 뒤 오히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은퇴 후, 다시 찾은 가족

1965년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권 위원은 이후 종합무역회사로 출발했던 대우그룹과 사무용가구회사인 퍼시스 등을 거치며 2002년 은퇴 때까지 35년 동안을 쉼 없이 일해왔다. 특히 대우그룹에 재직하던 시절 권 위원은 주로 대우가 새로운 회사를 인수하는 데 관여하고 인수한 회사의 경영상태를 안정화시키는 일 등을 도맡았다고 한다. 대우그룹의 확장에 큰 역할을 담당했고 사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경영과 관련된 핵심 분야에 주로 관여하다보니 권 위원은 업무에 있어 그만큼 치열하고 바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일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여가시간을 제대로 즐겨 본 적도 없는 건 당연했다.

"대우그룹에서 퍼시스로 옮겨갈 즈음부터 실질적으로 은퇴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이 일을 그만둘 수도 있겠구나'라는 사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하지만 생각뿐 막상 은퇴 후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진 못했습니다. 대우그룹에 이어 퍼시스에서도 사장이라는 큰 직책을 맡고 있다보니 미래를 준비하기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안이 급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게 막상 은퇴를 하고 나자 처음에는 갑작스럽고 막막한 느낌이 컸습니다. 바쁜 데만 익숙해져서 그런지 여가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은퇴 후 처음 1년은 바깥 활동을 가급적 줄이고 주로 집에서만 보냈다. 그동안 못읽었던 책도 마음껏 읽는가 하면 등산이나 바둑 등 취미생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권 위원은 이때 처음으로 "쉬엄쉬엄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집에서 부대끼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에도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바쁜 업무를 핑계로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을 그제서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퇴하고 나서 가장 달라진 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예전에도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족이었지만 아무래도 내 시간이나 노력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가족보다는 업무가 더 우선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밥, 청소, 빨래 등 집안의 모든 일을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게 나한테는 큰 행복입니다. 예전에는 하루종일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가족들과 늘 마주보며 살다보니 예전에는 미처 못느꼈던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은퇴 한 뒤 여유를 찾고보니 젊은시절부터 미리 노년기를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못내 아쉽다"며 말을 이어간다.

"가족뿐만이 아닙니다. 젊은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지만 너무 현재에만 몰입했던 듯 합니다. 노년기에 대한 대비책은커녕 가까운 주변조차 돌아보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내달렸습니다. 물론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만큼 그게 밑거름이 되어 지금도 남들 못지않게 여유로운 노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조금만 더 미래를 내다보고 차근차근 준비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요즘엔 젊은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곤 합니다.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라고요. 그래야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보다 계획적인 미래를 꾸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열이 남아있다면, 나는 아직 젊다.

권 위원은 은퇴 초기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껏 여유를 만끽하는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 더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욕심이 남아있는데 그저 시간을 때우듯 여생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게 된 것이 바로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이었다. 은퇴 전 하던 일과도 잘 맞아떨어져 권 위원은 망설임없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자문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35년 동안 현직에 있으면서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컸습니다. 현재는 실버창업 자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편입니다. 나 또한 은퇴를 경험한 뒤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노인들의 창업 문제를 다루다보니 깨닫는 점이 많습니다."

권 위원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사실 우리 세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 사회활동을 했던 덕에 그저 매순간 성실하게 일했던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 같은 경우도 은퇴를 계획적으로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지금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보낼 수 있는 데는 이런 운이 많이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년기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인들이 더 많죠.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난리라고 하지만 노인들도 일자리가 모자란 건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노인인구는 계속 늘어날테고 노인문화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노인문화의 획일성에 대해 언급했다. 65세쯤이 되면 은퇴를 하고 은퇴 후에는 소일거리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것을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은퇴 후에 대한 노인문화 역시 모두들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획일적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런 획일성을 깨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인문화가 진화될 수 있도록 정부도 기업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경로를 걷다보니 노인 일자리 등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여러가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그래서 의미있는 일입니다. 실버창업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인들 스스로가 변해야 합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에 대한 애착이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정열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젊은 인생'입니다. 물론 무모한 도전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새로운 도전을 꺼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권 위원은 '나이를 잊은 도전'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들어 시작하는 실버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 큰 규모로 사업을 시작해 대박을 노리는 것보다는 소규모라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종을 찾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경우 주변 얘기에 솔깃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실버창업일수록 아이템을 선정하는 데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경제력이나 육체적으로도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나이로 인한 조급증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기 보다는 파트타임이라도 실제로 경험해 보고 현실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버창업 지원을 위해 지금도 정부가 많은 지원을 보태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 모자라다며 힘주어 말하는 권 위원.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나온 진지한 충고이기에 권 위원의 말이 더욱 가슴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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