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와 선순환 고리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2008.04.15 16:40

[머니위크 칼럼]

차를 몰고 어딘가 가려면 누구나 차선을 바꾸면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하려면 옆 차로에서 바짝 밀어붙여 틈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무리한 끼어들기를 하려다 그러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충분한 거리가 있는데도 그러면 운전이 짜증스럽고 힘들어진다. 결국 길도 더 막히고 만다.

길은 답답하고 갈 길은 바쁘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각박해진 인심과 조급증이 길거리에 가득하다. 무리한 새치기를 막으려는 정의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양보해줬다고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차선변경을 가로막는 것이 내가 빨리 가는데 유리한 방법일까? 내 앞에 차가 한 대라도 적어야 빨리 갈 수 있다는 듯이 운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다가 대한민국 초보운전자는 한없이 직진만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차량의 흐름이 원활해지려면 양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늘 눈앞의 이익만 노리다보면 결국 손해를 본다는 것이 상식이듯이. 때로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얻을 수도 있고 하나를 양보하지 않으려다 둘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게 상식이다. 상식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시스템적이다. 단선적인 영향이나 결과만을 생각하지 않고 역으로 되돌아오는 영향을 고려한다. 선순환과 악순환의 고리를 동시에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 고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많은 일이 애초 의도와는 반대로 귀결된다. 크고 작은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뉴욕에서 마약을 소탕하기 위해 대규모 밀매조직을 검거하였을 때 마약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마약 밀매자가 오히려 증가한 적이 있다. 특정지역에서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매매가 일반 주택가까지 침투한다.

집값을 잡으려고 개발하려는 신도시에 돈이 풀려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 소매점에서 물건이 잘 팔린다고 계속 주문을 내면 결국 과잉재고에 빠진다. 판촉을 위해 싼 가격에 끼워주기를 시작하면 이익이 감소하고 경쟁업체의 모방 판촉을 촉발시켜 결국 수익성과 품질은 더 악화되고 끝내 고객을 잃고 만다. 당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내건 갖가지 듣기 좋은 공약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교차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신호등을 설치하는 방법과 로터리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신호등은 일종의 규제역할을 하는데 차량 소통량에 따라 가변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로터리는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매우 가변적으로 교통흐름을 제어한다. 단 한 가지 지켜야 할 아주 단순한 조건이 있다. 나의 진행방향 반대편에서 먼저 로터리에 진입한 차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신호등을 매달고 전기를 쓸 일도 없이 이 규칙만 잘 지키면 안전하고 빠르게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다. 오가는 차도 없는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무작정 서 있을 일도 없다.

양보가 미덕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정작 문제는 ‘알고 있는 지식’과 ‘실제 행동에 적용하는 지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의 일에 관해서는 정답을 잘 훈수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지행합일이 안 되는 것이 늘 문제이다. 한 번 더 도약하려고 빠르고 가파르게 직진하는 지금, 복잡한 순환의 법칙과 양보가 가져오는 순기능을 한 번 더 살펴볼 일이다. 역사는 길고 기업도 사람도 오래 번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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