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도박'..가격 목멘 약가협상

이기형 기자, 신수영 기자 | 2008.04.03 09:08

예측불가 약가결정 시스템<하>합리적 기준 찾아야

에이즈치료제 '푸제온', 백혈병치료제 '스프라이셀'의 약가협상이 지연되는데 따른 위험은 없는 것일까. 건보당국이 스스로 지정한 필수의약품인데 말이다.

지난 2004년 시판허가를 받고도 약가가 안맞는다며 로슈가 시판을 거부하고 있는 '푸제온'은 외국의 구호단체 등을 통해 약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아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건보공단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직접 사면 된다. 하루 약값은 6만4000원 정도가 든다. 다른 약까지 합치면 하루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관계자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기 어렵다"며 "국내에서는 미국 구호단체를 통해 1명의 환자가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푸제온'을 복용하면 기존 약에 대해서도 효과가 나타나 다시 복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기 환자로서는 푸제온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스프라이셀'은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만성골수성백혈병(CML) 환자와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ALL)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이다. 내성 환자들에겐 '글리벡' 용량을 늘리게 된다. 하지만 내성환자에 대한 고용량 '글리벡' 사용은 CML 환자에만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ALL 환자로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경우에는 사용할 약이 없다. 그래서 '글리벡'을 고용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보측은 푸제온에 비해 스프라이셀 약가협상에 여유로운 게 사실이다. 백혈병 환자들이 스프라이셀 임상 프로그램에 참여, 무상으로 약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임상을 모두 끝냈다. 하지만 약을 원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2010년까지 임상을 확대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임상이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임상확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임상을 볼모로한 약가협상은 오히려 다국적 제약사가 임상을 협상무기로 악용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임상초기에 '맛뵈기' 형식으로 신약을 공급하다가 중단하면 약가협상에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건보측이 '스프라이셀'에 느긋한 또 한가지 이유는 후발신약이 뒤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자사의 '글리벡' 내성환자를 대상으로 한 신약에 대해 국내 시판허가를 받고 약가협상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BMS 관계자는 "먼저 신약을 개발하고도 뒤늦게 개발한 제품보다 시판이 늦는 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다"며 "그럼 어떤 회사가 막대한 돈을 들여 신약을 빨리 개발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높은 약값을 받으려는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바티스는 글리벡 한알 가격을 2만3045원으로 고수하는 대신 환자 본인부담금 10%를 회사에서 보상해주는 전략을 썼다. 다른 나라에서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한 것이다.

보건의료제약산업은 환자의 생명과 연관되는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감만 가지고 신약을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신약에 뛰어들고, 그 돈으로 다시 신약을 꿈꾸는 것도 사실이다. 합리적인 기준과 절차에 따라 약가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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