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짜리 지하 성역 '와인창고'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 2008.04.13 09:51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2003년 가을, 우리 가족은 15년간 살던 올림픽 선수촌을 떠나 용인시 양지면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80대 후반이셨던 노부모님의 건강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살면서 올림픽공원 등 주변의 좋은 환경이 역설적으로 좀 더 나은 곳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양지면 평창리 삼성 에버랜드가 조성한 푸르메마을에 땅 660㎡(200평)을 구입한 후 330㎡(150평)쯤 되는 전용면적에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한때는 목수가 꿈이었지만, 못 하나 박는 것도 서투른 왼손잡이인-연장사용을 빼고는 대부분 오른손잡이다- 나는 강남의 사무실을 둔 설계사를 소개받아 설계와 앞으로 진행될 집지을 동안의 공사 감리를 맡기기로 계약하였다. 2003년 11월 시작된 도면작업은 2004년 5월23일 조촐한 개토식을 시작으로 마무리되었다.

무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설계를 담당한 현장소장과 수차례 만나면서 우리 부부의 집에 대한 꿈을 이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만약 언젠가 여러분도 집을 짓게 된다면 설계할 사람들과 충분한 대화 기간을 갖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집짓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설계과정에 투입했다. 아울러 집사람과 나의 땅따먹기 게임이 본격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1차 설계 개요는 1층 99㎡(30평), 2층 89㎡(27평)과 지하 66㎡(20평)으로 확정되었다. 1층은 이사를 결정하기 전에 시골로 이사를 반대하는 집사람을 꼬시는 조건으로 주방은 우리집에서 가장 큰 공간으로 제일 좋은 방향을 제공한다는 사전 공약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실제로 우리집에서 가장 큰 창이 두 개나 동향과 남향으로 각기 배치되었고 좀 대형인 와인냉장고로 인한 공간부족으로 이때까지 김치냉장고도 하나 없는 불우이웃 상태도 충분히 해소되었다. 2층은 필자의 평생소원이었던 서재 설치가 작지만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우리 집이 들어설 대지는 도로보다 건물 1층 정도 높게 위치하고 있어 지하주차장 설치는 불가피 하였다. 나머지 조그만 보일러실을 빼고는 기타공간이었다. 당초 계획은 지하를 1층과 같은 99㎡ 정도로 의견이 오가는 동안 나는 적어도 50㎡가 넘을 와인셀러와 그 부속공간을 꿈꾸며 마냥 행복해 했지만 너무 늘어나는 비용 때문에 총 면적이 66㎡으로 줄었고 종당에는 2대의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대세에 밀려 와인창고는 10.1㎡(3.6x3.3x3.2m 3.06평)로 대폭 축소되어 확정 가결되었다.


어찌되었건 재벌급 인사를 제하고는 아마 국내 최초로 지하셀러를 가진 사나이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살기로 하였다. 2004년 10월31일 양지면민이 된 이후 2년 동안 지하셀러의 온도와 습도를 측정한 결과 두 가지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사면이 모두 땅속이 아닌 셀러인 관계로 여름과 겨울의 온도변화(10~20도)와 습도변화(30~90%)는 적정온도 15도 내외와 적정습도 50~70% 정도에서 상당히 이탈한 수치를 보였다. 기계적으로 적정한 보관 상태를 유지하려면 의외로 많은 비용지출을 감수해야만 한다.

나는 여름에는 제습기를 주기적으로 가동하고 겨울철 낮은 습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다가 남대문시장에서 장난감 같은 조그만 물레방아로 습도문제를 거뜬히 해결하였다. 온도의 변화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연의 산물인 와인을 적당하고 점진적인 변화에 노출시키는 것이 더욱 자연스런 보관방법이라 생각된다.

이것으로 나의 와인창고 짓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단독주택을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은 꼭 와인을 위한 지하창고를 염두에 두기 바란다. 다만 격렬한 반대로 어려움에 빠지지 말고 미리 가족들에게 좋은 와인을 수시로 권해 아군으로 회유하는 전략구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시 에스메랄다를 잡으러 노트르담성당으로 진입하려는 병사들에게 종지기 콰지모도는 "성역이다" 외치며 그들을 가로 막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상, 즉 성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9.9㎡짜리 성역을 가진 나는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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