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홍길동이 만난다면…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 2008.04.01 12:41

[마케팅 톡톡]다양한 경험의 융합이 필요해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중경삼림>, <화양연화>로 잘 알려진 왕가웨이(왕가위) 감독을 만났습니다.

오우썬(오우삼) 감독이 미국에서 유명하다면 왕 감독은 유럽영화계에서 유명하다고 하죠.

빠른 편집과 이미지 중첩기법, 만남의 갈증과 허무를 동시에 다루는 그의 영화는 감성이 남다릅니다. <킬빌>,<저수지의 개>로 유명한 타란티노 감독도 왕 감독의 스타일에서 많이 영감을 받았답니다.
 
◇디자이너 출신 왕가웨이 감독
 
그날은 왕 감독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때문에 왕 감독 특유의 선글라스를 벗고 정장 차림이라 다소 낯설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의 맺고 끊음이 시원시원하고 강한 눈빛과 번쩍 던지는 감성 아이디어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왕 감독은 사진 촬영이 취미라 해서 사진 컷을 보니 복잡한 이마쥬가 중첩되어 있어서 얼핏 보기에 꽤 난해해 보였습니다. 그의 영화가 다양한 컷과 인물들의 중층 디자인처럼 보이듯이 그는 사진도 디자인하는 것일까요. 실제 왕 감독은 디자인학과 출신입니다.
 
그 유명한 앤디 워홀도 상업 디자이너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술+공장’이라는 개념을 쉽게 차용했고, 스크린 기법으로 복제가 가능한 미술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빛의 교회’, 노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는 뜻밖에도 공고 졸업에 권투선수 지망생이었다고 합니다.

 
항공사진 작가 얀 베르뛰랑도 전직은 영화배우였습니다. 아프리카 사자 연구에 관심 있던 그는 거기서 사진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하늘에서 포착하는 땅은 사진을 넘어 지구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춘향과 길동의 합궁
 
이들의 힘은 융합에서 나옵니다. 소와 닭만큼이나 관계없을 것 같은 그 이질적 경험들이 내부에서 융합되어 색다른 감성과 관점을 만들어 내는 거죠. 한류와 난류가 만나서 어장을 만들듯이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날 때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한 ‘메디치 효과’ 가 폭발한다고 합니다.
 
비디오 테크놀로지와 아트를 결합한 비디오 아트, 팝과 오페라를 융합한 파페라, 곡예와 연극을 융합한 <퀴담>, 서구 화법과 중동 아시아 지방의 신화를 결합한 마이클 파크스의 매직 리얼리즘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감성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이야기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하는 데 융합에 착안해서 춘향과 홍길동을 합궁시키면 어떨까요? 위스키와 맥주를 합잔한 폭탄주처럼 위력적인 놈이 나올 듯합니다. 춘향전 이몽룡은 캐릭터가 약하고 홍길동에는 여자 캐릭터가 없죠. 무협과 사랑, 외로운 홍길동과 야무진 춘향의 성격대립, 부패 권력과 매정한 부정이 착착 녹아들면 로미오와 줄리엣, 쾌걸 조로를 능가할 지도 모르죠. 패러디 드라마인 <쾌도 홍길동>과는 리얼리티의 맛이 다를 것 같습니다. <태왕사신기>는 역사에 주술적 판타지를 섞고, 생뚱맞은 우리 시대의 화법을 융합했습니다.
 
이처럼 붕어빵 제조로 알려진 우리 교육환경이나 기업환경에도 융합의 바람이 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백조의 호수’만 쳐다보지 말고 ‘지네와 두꺼비’ 설화도 발레로 만들어 보고 홍삼과 치즈, 녹차와 올리브를 합체시키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건국 6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경험들을 한번 융합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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