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높게 받고 마케팅에 사활

머니투데이 이기형 기자, 김명룡 기자 | 2008.03.27 09:38

개량신약 다시보자<하>건보 돈은 눈먼 돈

국내 제약사들이 '개량신약'에 얼마나 많은 개발비를 쓰기에 '가치 폄하' 운운하며 큰소리를 치는 것일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연구개발(R&D)'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많아봐야 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를 포함한다고 해도 개량신약 한알의 원가는 몇백원을 넘지않는 수준이다. 몇십원이 고작한 경우가 많다.

최근 개량신약 보험등재 논란을 불러일으킨 항혈전치료제 '플라빅스' 시장을 보면 29개의 제네릭(복제약)이 출시돼있다. 그럼에도 플라빅스가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한알의 가격이 2168원으로 가장 높지만 항혈전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의사들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도 건보에서 상당부분의 약값을 대기 때문에 굳이 값싼 제네릭을 먹을 이유는 없다.

건보에서 돈을 받는 '급여' 약제가 되면 건보에서 일반적으로 70~90%의 약값을 지급한다. 이 때문에 제약사로서는 일단 높은 약값을 받는 게 최대 관건이다. 제조원가와 약값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액을 마케팅비용에 과감하게 사용, 시장점유율을 늘리기만 하면 된다. 안정성 등을 이유로 오리지널을 고집하던 의사들도 대형 제약사의 대대적 마케팅에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제약사-의사간의 리베이트 비용이 건보 재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종합병원 한 의사는 플라빅스 처방과 관련, “의사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약을 선호한다"며 "개량신약이나 제네릭이 별도의 임상이나 생물학적동등성실험을 거쳐다고 하지만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효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영업력에 따라 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플라빅스 제네릭의 최저가가 511원이다. 제네릭은 첫번째로 출시될 경우 오리지널 약의 68%를 적용토록 돼 있고, 늦어질수록 약가가 떨어지게 돼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제약사들이 플라빅스 개량신약의 보험등재를 요청한 것은 개량신약, 즉 '자료제출의약품'이 제네릭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규정때문이다. 개량신약은 약효개선없이도 오리지널 약가의 80%, 제네릭은 68%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주 플라빅스 개량신약이 높은 약가로 심평원의 약제급여평가위를 통과한 것도 이같은 규정때문이다.

당국이 개량신약을 정책적으로 우대하고 있다. 건보재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개량신약중 최대의 히트상품은 한미약품의 고혈압치료제 '아모디핀'이다. 아모디핀은 화이자의 노바스크의 염을 ‘베실산’에서 ‘캄실산’으로 바꿔 만든 약품이다. 아모디핀은 노바스크의 80%수준에서 약가를 받아 2004년에 출시, 노바스크 시장을 잠식했다. 지난해 아모디핀의 매출액은 561억원. 특허가 끝나지 않아 제네릭이 출시되지 않았고, 다른 제약사보다 개량신약을 일찍 출시, 시장을 선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바스크 제네릭은 올해초 출시됐다.


다국적 제약사의 물질특허를 피해가기 위해 염을 바꾸는 기술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제약사들의 볼멘소리도 들어볼만 하기는 하다. 물론 이를 예상하고 출원한 물질특허를 교묘하게 파고들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화이자 관계자는 "아모디핀은 약효 개선과 상관없이 염을 변경해 약품을 내놓은 것은 단순히 특허를 피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며 “이는 국내에서만 허용될 뿐 세계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이같은 치팅(cheating) 행위로는 세계 제약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량신약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항궤양치료제 ‘넥시움’이다. 이 제품은 자체 위궤양치료제였던 프리로섹(성분명: 오메프라졸)을 개량해 만들어낸 개량신약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소화성궤양치료제인 프리로섹의 성분을 분리하면 위궤양치료에 효과가 뛰어난 성분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제품화 했다. 지난 2000년 탄생한 넥시움은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55억달러, 국내에서도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진정한 개량신약과 '짝퉁' 개량신약의 구분은 확실하다. 미국에서는 ‘생산자가 물질의 구조를 변형한 의약품’(Incrementally Modified Drug. IMD)이라고 개량신약을 정의하고 있다. 개량신약은 기존 신약의 분자구조를 변형, 약효를 높이거나 부작용 을 낮춘 신약을 의미한다. 허가 규정을 통과한 개량신약의 경우 3년간의 자료 독점권이 부여되기도 한다. 약가도 일반적으로는 신약의 80% 수준이며, 개선된 효과나 부작용이 입증되었을 경우에는 기존 신약의 170%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 진짜 개량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것이다.

약효 개선없이 단순히 염만 바꾸는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짝퉁 '개량신약'과는 구별된다. 다국적 제약사는 쳐다보기 조차 어렵다면 눈을 옆으로 돌려봐도 나아갈 방향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이스라엘 테바, 인도 란박시는 진짜 개량신약 강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특허가 만료되었을 때 제네릭을 개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를 무력화하거나 또는 개량신약을 내는 등 적극적인 의미의 수퍼제네릭 전략을 사업방향으로 잡고 있다.

물론 우리 제약산업의 수준이 여기에도 미치는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개량신약' 우대정책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기존에 제네릭 제품이 나온 상황에서 단순히 개량신약이라고 해서 오리지널 가격의 80%를 적용해달라는 혹은 제네릭보다 높은 가격을 달라는 '몰염치'에서는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책임있는 보건당국으로서의 자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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