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거친 말, 흔들리는 시장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 2008.03.27 09:15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무척 거칠어졌다. 무엇보다 환율과 금리 등의 변동폭이 크다. 글로벌 신용경색, 달러화 약세 등 대외요인이 1차 변수지만 최근 국내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엇갈린 발언이 시장 혼선의 진원지라는 지적이다.

거친 것은 시장만이 아니다. 속속 표출되는 당국자들의 '시장관'은 마치 공개적 언쟁을 벌이듯 서로를 압박하는 투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밤 강연에서 던진 말이 단적인 예다.

"한·미 금리차 2.75%포인트가 무슨 의미인지는 설명을 안해도 다알 것이며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추이를 감안할 때 어느 길로 가야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는 "금리정책이 중앙은행 소관"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사실상 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는 한국은행을 공격했다. 이는 "통화금융정책과 관련해 재정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 거부권을 갖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자명해진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같은 날 오전 정부를 향해 '잽'을 날렸다. 그는 "항상 중앙은행이 물가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물가가 제일 중요한 자료라는 것은 맞다"며 성장을 위해 금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정부를 넌지시 비판했다. 그간 정부의 계속된 공세에 한마디를 던진 것인데 결과적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런 '기싸움'의 여파로 급락 하루 만에 급반등했다. 이를 두고 "균형점 찾기"라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지만 시장 참가자들이나 일반 투자자들은 대체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정부 당국자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선진국의 경우 대통령이나 재무부 장관이 환율이나 금리 수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해당 당국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이를 고려한 때문이다. 비공개된 자리에선 종종 설전을 벌이지만 대외적으론 표를 내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표 혼선 끝에 대선 승리가 확정된 2000년 12월 중순. 당선자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첫날 그가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다. 그는 그린스펀 의장을 '굿맨'(good man)으로 지칭하며 "그의 능력을 가장 신뢰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의 어깨까지 두드리며 친근함을 과시했다.

그린스펀 의장의 '구애'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그는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폴 오닐 알코아 회장과 만나 향후 정책의 우선순위를 격의 없이 논의했다. 당시는 오닐 회장의 내정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이었다. 두 사람이 닉슨과 포드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함께 근무했고, 이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인 모습이다.

오닐은 부시 행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전 그린스펀 의장까지 참여한 모임에선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모처럼 찾아온 재정흑자가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분위기는 2년 후 오닐의 회고록을 통해 알려졌다.

경제성장의 최적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관련당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이때 기관의 입장이 다른 경우 몸싸움이라도 벌여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 만의 전투여야 한다.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공개적인 기싸움이 아니라 밀실의 '끝장토론'이 우선돼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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