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자리 확대와 의료산업 활성화

이진석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 2008.03.19 12:30
'고용 없는 성장.' 한국 경제가 처한 딜레마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취업자 수를 나타내는 고용계수가 1990년대 초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니 상황의 심각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인식을 반영하듯 지난 몇 년 사이에 의료산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주요 선진국들의 의료산업 종사자 규모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10~15%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의료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매우 큰 영역이다. 첨단 생명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의료산업이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산업의 고용 유발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산업 종사자의 규모가 전체 임금 근로자의 3~5%, 1개 병상당 고용자 수는 주요 선진국의 1/3에 불과하다.

 재계와 학계의 전문가들은 의료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인력과 시설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주식회사 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산업의 일자리 창출은 의료의 영리화와는 별 상관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병상당 고용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국영의료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이다.

 의료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 구성을 보면 이런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의료의 영리화 수준과는 상관없이 간병과 간호인력의 규모에 따라 전체 의료산업 종사자 규모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간병과 간호를 병원에 소속된 간호사나 간병인이 아니라 가족이 부담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한 아무리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의료산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신중하지 못한 규제 완화와 이로 인한 의료의 영리화는 오히려 의료산업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진료재료와 시설비용의 절감이 쉽지 않은 의료의 특성상 병원의 지출 절감 노력은 전체 지출의 50%를 차지하는 인건비 부문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영리병원과 주식회사 병원을 비교분석한 미국 연구들에서도 주식회사 병원의 근로조건이 더 열악할 뿐 아니라 이직률도 더 높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물론 기업가 정신으로 의료의 혁신을 선도하는 노력은 필요하며 제도적으로도 보장돼야 한다. 일부 계층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고급화되고 차별화된 서비스 욕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이 역시 국내 의료산업을 통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선별적인 성향과 욕구를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보편적 목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다.
 
대다수 평범한 병의원과 국민들에게까지 영리의료의 압력이 여과 없이 밀어닥친다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보다 손실이 더 클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의료산업은 다른 어떤 영역 못지않게 서민의 삶과 가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만큼 섣부른 실험이 아니라 신중에 신중을 기한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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