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환율아 더 올라라..다만 천천히"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08.03.14 16:52
"환율아 더 올라라. 대신 좀 천천히." 요즘 외환시장을 보는 당국의 속내가 이렇다.

수출과 성장을 중시하는 기획재정부의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제1차관은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걸 반기는 쪽이다. 최소한 1000원대는 염두해두고 있다.

당국이 걱정하는 건 속도다. 지나치게 가파르게 오르면 외국인의 주식 매도를 부추겨 주식시장이 주저앉을 우려가 있다. 이 경우 수입물가 상승으로 물가가 뛸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1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9원 뛰어오른 997.3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10월말 900원선이 일시붕괴된 뒤 불과 4개월여 만에 11% 가까이 급등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환율 하락을 막는데 사력을 다하던 당국이 이제는 환율 급등을 놓고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환율이 오르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당국도 반기는 기색이다. 물가 부담이 우려되지만 외환당국엔 '물가'보다 '수출'과 '경상수지'가 우선순위에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규모 개방국가는 높은 환율을 토대로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지키는 것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게 현 외환당국의 시각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6% 성장' 달성에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물가와 경상수지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외환당국의 영원한 고민거리"라며 "물가 안정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계 어디에도 물가를 잡으려고 환율을 끌어내리는 나라는 없다"며 "물가는 환율 이외의 수단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이 오르는 속도다. 지난달말 원/달러 환율을 불과 열흘새(거래일 기준) 939원에서 997원으로 58원(6.2%)이나 뛰었다.

환율이 급등하면 당장 외국인의 엑소더스(대탈출)와 주가 급락이 우려된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1% 가까이 하락하며 1600선에 가까스로 턱걸이했다. 외국인은 2800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지시한 마당에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는 점도 당국의 고민이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3.3%로 묶는 것을 목표로 잡지만 이미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였다.

당국도 속도조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어떤 가격변수든 급하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으며 환율도 마찬가지"라며 "환율의 급격한 움직임을 적절히 제어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환율이 가파르게 오른다고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끌어내리기도 쉽지 않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의 국민정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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