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10년 배워도 입못여는 이유

이찬승 능률교육 대표 | 2008.03.11 10:43

[시론] 영어 공교육이 성공하기 위한 4가지 조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내놓았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은 방향성 면에서는 공감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면서 원칙과 절차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인상을 준 것은 아쉬웠다. 영어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설득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거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에 영어 공교육이 혁신에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영어 교육의 목표부터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인수위의 발표 이후 진행된 논의에서는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곧 말하기 능력을 뜻하는 것처럼 비춰졌는데, 이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회화 기술(how to say)과 말할 내용(what to say)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말하기의 밑거름이 되는 읽기와 듣기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읽기는 어휘와 문법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영어의 4 스킬 중 말하기 능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폭넓은 읽기와 듣기를 기반으로 한 말하기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 '말하기'란 말하는 사람들의 인지수준에 맞는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이지 겨우 길 묻기, 물건 사기 등 서바이벌 수준의 영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10년 넘게 영어를 배우고도 입도 열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한 인수위는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영어를 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확성 위주의 교육을 유창성 위주로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영어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국어를 처음부터 정확히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도, 한국의 영어교육은 영어로 말하거나 쓸 때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수십년 동안 주입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학생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해보게 하는 것이다. '나도 영어로 말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과 재미를 심어주는 것이 더 급한 일이다. 정확성은 나중에 보완해도 늦지 않다.


셋째, 영어 교과서 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에서 교과서 집필 지침을 구체적으로 내려주면 붕어빵처럼 비슷한 교과서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준이 비슷한 교과서를 외고나 인문계고, 실업계고 모두 함께 쓰게 하는 것은 준 해외토픽 감이다.

지금은 학습자 중심 시대이다.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지 학습자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시대인 것이다. 온갖 제약 속에 만들어지는 현재의 영어 교과서는 우선 재미가 없다. 대도시에는 조기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를 선생님보다 잘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인 내용과 수준의 영어 교과서를 사용하게 하니까 학생들은 유학을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는 교육지자체별로 다양한 영어 교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넷째,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제 역할을 하도록 기획, 개발돼야 한다. 국가가 개발중이라는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시험 성적을 통과 여부로 평가한다면 일찌감치 통과한 학생은 영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부터, 대입에서 변별력을 제공하지 못하므로 대학에서는 또 다른 영어 시험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입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다양하다.

평가가 모든 수업 내용을 결정하는 현실을 고려해서 학업성취도 평가, 내신 평가, 고입·대입을 위한 영어 평가가 서로 따로 놀지 않도록 합리적인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일리가 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빠르게 통합되고 있으며, 영어는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래에 세계무대의 주역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영어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혁신 드라이브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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