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권력자의 정조준 대상이 된 공무원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이다. 관료주의,무사안일주의,조직 이기주의 등 공직사회의 고질병에 메스를 대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따르겠다며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공무원을 세금도둑으로만 보는 현 정권에 대한 냉소적 반응이 지배적이다. '언제까지 가나 보자'는 방관자적 자세도 엿보인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추진하는 공직사회 개혁,그리고 이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 업무보고가 열린 과천 기획재정부 청사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전례없이 아침 7시30분에 업무보고를 주재한 이 대통령은 작심이라도 한 듯 공직자들의 정신자세를 질타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서번트(servant), 쉽게 말해 머슴인데, 말은 머슴이라고 하면서도 국민에게 머슴역할을 제대로 했나 돌아보라. 주인보다 일찍 일어나는게 머슴의 일인데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서야 되겠냐"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비판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직사회를 정조준했다. "재정 위기가 오고, 일자리 줄어도 신분보장되는 여러분은 걱정이 없다. 그러다보니 국민이 정말 아파하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10년,20년전 정책을 내놓고 같은 이야기만 한다. 이런 정신으로 어떻게 살아남겠냐"고 했다.
모피아,관료집단 군기잡기= 이날 대통령의 작심발언은 정부부처중 첫 업무보고인데다 과거 모피아(MOFIA, 재무부(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불릴 정도로 관료집단의 본산인 기획재정부를 겨냥한 군기잡기로 해석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머슴론'을 제기한 이유는 공직자가 변해야 나라가 발전하고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할수 있는 만큼 솔선수범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국가 예산을 조정하는 '큰 머슴'이라는 점에서 공직자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새벽출근,노 세터데이(No Saturday) 등 취임후 몰아치고 있는 강행군과 관련, 공직사회 일각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반발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공직자들이 변화와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무사안일과 타성에 젖은 관습을 벗어던지라는 강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부인했지만 사실상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것도 집권 초반 공직자 기강 세우기의 일환으로 읽힌다.
"언제까지 가려나.." 냉소적인 공직사회=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자 '일벌레' 스타일인 이명박 대통령 취임후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장.차관과 실.국장의 출근이 빨라지면서 일선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출근하고 토·일요일까지 반납하고 있다.
"일하는 대통령이 와서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기류도 있지만 과도한 업무압박에 대한 호소가 지배적 반응이다. 특히 하위직으로 내려갈수록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경제부처 간부는 "아침 7시 회의를 준비하려면 6시까지는 출근해야 하고,그러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며 "오후에는 정신이 멍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푸념했다. 이와관련 관가에서는 '얼리버드(Early bird)'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아직 조직적인 반발은 없지만 냉소적 반응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을 일 안하고,세금 도둑질 하는 사람들로 매도하는 정권태도에 불쾌하다는게 일반적 인식"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노조 인사는 "공무원에게 일을 시키려면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하는데 일하는 분위기를 오히려 해치고 있다"며 "조기출근만 해도 '총선이 끝나면 그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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