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국격(國格)의 척도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 2008.03.05 09:17

[쿨머니칼럼]기부자에 대해 배려하는 정책, 문화 필요해

우리사회에 희망의 싹이 보인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요즈음 우리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이지만 나라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고무적인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우선 최근에 있었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는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으나 그 후 현장으로 줄을 잇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은 암흑 속에서 만난 한줄기 빛과 같은 안도와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기름으로 얼룩진 바닷가에서 땀 흘리며 봉사하는 각계각층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위기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우리국민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대다수의 대기업들도 사회공헌활동을 전담하는 기구를 구성하여 기부 및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특검으로 인해 재계는 벌집 쑤셔 놓은 듯하고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도 최고조에 달해 있는 형편이라 기업들의 투자마저 위축될까 우려되는 시점에 그래도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전례 없이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가닥 위안을 느끼게 한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새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장에 2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서약한 건국대의대 송명근 교수와 기부천사로 유명한 가수 김장훈씨 등을 초대하여 기부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정부의 기부자에 대한 배려는 기부문화의 창달을 유도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으로 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한다. 이 대통령 자신도 “집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쓰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어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흐뭇한 일이 있는 가운데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 국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모 의원은 장관후보자에게 명예와 재산의 관계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끝에 “재산을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 출연할 의사가 없느냐?”고 강권하듯 물었고 결국 후보자로부터 “있습니다”라는 답을 얻어내었다고 한다.


그런 강요성 질문은 인사청문회의 질의사항으로는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없고 그 답변도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부아가 나는 것은 그동안 우리사회에 건전한 기부문화가 자리 잡는 데에 걸림돌이 되어온 손목비틀기식 비자발적 기부가 그것의 문제점을 알 만한 사람들에 의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좋은 일, 유쾌하지 못한 일을 막론하고 우리사회가 나눔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선과 기부는 정부의 손길이 채 못 미치는 곳을 어루만지는 복지정책의 보완재 역할을 하며 우리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막중한 소임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거론되는 이 시점에도 우리사회의 나눔 문화는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도성장을 단기간에 이루어 내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나눔을 남의 일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나라의 나눔 수준은 국격(國格)의 척도이기도 하다. 미국이 짧은 시간에 세계의 일류국가로 부상하는 데는 막강한 국력뿐 아니라 카네기와 록펠러의 선행 이래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전통이 된 나눔의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대국이 나눔에 인색하다면 그것은 졸부의 처신과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우리사회에도 나눔이 물결쳐서 이 나라가 경제대국에서 나아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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