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릴라이언스'는 뭐고, '무케시 암바니'는 누구냐고. 당시 그의 재산은 1조3000억 루피(약 29조8000억원)에 달했다. 고도성장하는 인도 경제를 등에 업고 증시가 활황을 보이자 개인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그의 친동생인 아닐 암바니 ADAG 회장의 재산도 9000억 루피에 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어떻게 이런 초고속 성장이 가능했을까. 창업주인 '디루바이 암바니'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의 삶은 인도판 '정주영'이라 할 만하다. 그는 구자라트주 상인계급 출신의 평범한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16세에 예멘으로 건너가 주유소 점원 등의 일을 하다 돈을 모아 1958년 단돈 5만 루피를 갖고 귀국, 68년 제직공장과 릴라이언스의 모체가 된 릴라이언스 상사를 설립했다.
디루바이 암바니는 꿈을 쫓는 인간이었다. 꿈은 곧 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국을 돌며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설파했고, "크게 보고, 남보다 앞서 생각하며 미래를 내다보라"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그가 다녀간 자리에는 항상 투자자가 넘쳐났다. 이는 곧 기업공개로 이어져 인도 주식시장 활성화로 나타났다. 릴라이언스그룹 주식을 보유한 인도 주식투자자가 300만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주식투자자 4명 중 1명 꼴이다.
그는 줄곧 "꿈을 꿀 수 있을 때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릴라이언스의 기업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장이 곧 생명'. 릴라이언스그룹의 슬로건이다.
박민준 코트라 뉴델리무역관 과장은 "정경유착 등과 관련해 비난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암바니는 인도 젊은이들에게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판 '왕자의 난'=위기도 있었다. 창업주인 디루바이 암바니가 2002년 7월 아무런 유언없이 두 아들을 남긴 채 갑자기 사망했다. 형인 무케시 암바니와 동생 아닐 암바니가 경영권 투쟁을 벌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상호비방이 난무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나가며 인도 주식시장이 출렁거렸을 정도다.
결국 모친이 중재에 나서 2005년 9월 형인 무케시가 그룹의 핵심 격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를 포함, 화학제품 생산업체 IPCL의 경영을 맡기로 했다. 아닐은 릴라이언스 에너지·통신·금융 등을 책임지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현재 릴라이언스 그룹은 형인 무케시가 경영하고 있는 릴라이언스 그룹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무케시는 릴라이언스 그룹의 모회사이자 인도 최대 민간기업인 릴라인어스 인더스티리 리미티드(RIL)을 갖고 있다. 석유·정유화학업체로 폴리에스테르 '얀'과 '섬유'의 세계 최대 생산업체다. 또 포춘이 선정한 인도 유일의 500대 기업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269위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73계단 상승했다. 인도 전체 수출의 8.2%를 차지하고, 전체 간접세의 8% 가량을 부담하고 있다.
RIL은 설비 고도화로 유명하다. 2006년 매출 272억 달러에 영업이익이 47억 달러에 달했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17.3%에 달한다. 국내 에너지업계 영업이익률은 5% 미만이다. GS칼텍스 허동수 회장이 평소 "고도화설비에 집중 투자, 정제 마진을 높여 성공한 인도 재계 1위 기업 릴라이언스를 닮아라"고 주문하고 있는 이유다. 자회사 릴라이언스 페트롤리엄은 하루 58만 배럴의 원유 처리가 가능한 정유시설을 건설 중에 있다. 이것이 완공되면 RIL의 정유처리 능력은 세계 최대 규모가 된다.
릴라이언스 그룹도 타타 그룹처럼 공격적인 M&A를 펼치고 있다. 무케시 회장은 작년 10월 연례주총에서 M&A 위주의 성장전략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와 아프리카 업체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유럽 업체 인수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보호막이 걷혀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그는 "외국인 직접투자 를 위해서도 유통시장은 개방돼야 한다"며 "시장 잠재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5∼6개 업체가 함께 경쟁할 공간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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