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투사의 변신 "먹거리 혁명 계속된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08.02.29 09:23

[쿨머니, 사회적벤처를 찾아서]<6-2> 신성식 자연드림 대표

↑ 신성식 자연드림 대표
"삶은 계속됩니다.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과격한 시위 외에도 많이 있더군요. 각자가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할 때 세상은 조금씩 아름답고 깨끗하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이 바로 그 사례죠."

1984년 서울시립대 도시계획학과에 입학한 한 젊은이가 3학년 때인 전두환 정권 때인 1986년 학생운동 전력으로 구속, 7개월 형을 살고 나왔다.

학교에서는 이미 제적 처리됐다. 정처 없던 그가 향했던 곳은 부평의 알루미늄 샤시 공장. 당시 많은 학생들처럼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노라'며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것.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이던 1980년대 후반 부평·부천 지역의 숱한 파업현장을 휘젓고 다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당수이던 무렵, 평민당 당사 점거농성도 주도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당시에는 노동운동 동지이기도 했단다. 한 때 이처럼 노동운동 투사로서 혁명을 꿈꾸던 그가 방향을 틀었다.

따뜻한 인상과 나지막한 목소리의 신성식(43) 자연드림 대표는 자신이 '인천 국민운동본부'라는 노동운동 조직에서 조직국장을 맡고 있던 1990년대 초반 무렵을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농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한 지인이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산물 직거래 업무를 맡아보지 않겠냐"며 말을 걸었던 게 생협 운동에 몸담게 된 계기였던 것.


당시 "혁명은 끝났다"며 활동가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던 시기, 그는 생협이 표방하는 '농촌 살리기' '친환경' '안전한 먹을거리' 등 표어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신 대표는 인천·부천 지역에서 생협운동을 계속해오다 1998년 한국생협연대에 발을 디뎠다. 2005년엔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확대보급하기 위해, 자연드림 설립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대표이사 직을 맡기에 이르렀다.

2004년부터는 성공회대 유통정보학과 겸임교수를 맡아 학생들에게 생협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는 그는 "1차 생산품(농산물)을 단지 가정에서 조리·소비하는 것만으로는 친환경먹거리 시장은 물론 생산기반도 확대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기존 생협의 활동은 1차 생산자에게 직접 수익금 일부를 나눠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친환경 식자재 시장이 커질 수 없는 구조죠. 앞으로는 가공·유통 설비 운용에는 실력있는 사람을 데려와서 쓰고 생산자에게는 그 설비의 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을 적용할 거예요. 시장 확대는 물론 고용창출까지 가능한 방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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