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 언론 정치성향의 경제학

손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2008.02.27 12:20
우리나라 몇몇 일간지는 그 정치성향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 이름 같기도 한 '조중동'이라는 3대 일간지의 합성어가 인터넷 사전에 등재되는가 하면, 언론학에서는 대통령 탄핵, 선거 같은 특정 이슈에 대한 보도 태도를 비교 연구할 때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언론사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사주의 성향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하고,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합니다. 또 경제학적으로 보면 상품 수요자인 구독자의 성향이 중요할 것이고, 광고주, 편집국, 리포터, 외부기고자의 성향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얼마 전 미국 일간지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Gentzkow, Shapiro 공저, What Drives Media Slant, 2007, 시카고 경영대학원). 우선 미국 전역의 일간지를 연구대상으로 한 것이 놀랍습니다. 정치성향 분석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용어 약 150개를 검색어로 활용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라크전쟁을 두고 공화당은 '테러와 전쟁'이라고 하는 반면 민주당은 '이라크에서 전쟁'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각 일간지가 어느 용어를 더욱 빈번히 사용하는가를 보고 성향을 파악했습니다. 여기에 판매부수를 우편번호 기준으로 집계하고, 선거관리위원회 데이터를 이용해 구독자의 지지 정당, 소득수준, 인종 같은 자료를 집계했습니다.

이 논문은 구독자의 성향이 일간지 정치성향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예상과 달리 사주의 성향은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포터의 성향, 정치인으로부터 압력, 지역 내 판매부수 경쟁 같은 요인도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 결과를 적용하면 국민 전체적으로 보수주의 경향이 짙어지면 신문사들이 보수화 경향을 보이고, 개혁 성향이 강해지면 신문 논조도 개혁 색채를 띠는 쪽으로 점차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조중동'의 높은 시장점유율은 '일간지 구독자'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많은 국가에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다양한 견해의 매체를 통해 뉴스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언론사의 소유구조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소유가 집중되면 균형잡힌 여론 형성이 어렵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논문은 사주의 성향이 언론의 정치성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니 언론 소유에 대한 규제가 효과적인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두 가지 시사하는 바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 논문은 언론사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분석모형을 설정했습니다. 언론사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극대화 등 다른 목적을 추구한다면 이 분석의 결과는 적용될 수 없게 됩니다.

또 일간지 시장에서 공정경쟁, 편집권 독립, 소유의 집중과 같은 제도적·관행적 요인들이 미국과 다른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학에서 아무리 꼼꼼한 분석으로 깔끔한 결과가 나와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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