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준 씨, 46년만에 서울대 최고령 졸업

머니투데이 오상연 기자 | 2008.02.25 18:39

[인터뷰]서울대 최고령 졸업자 이한준씨

보통 사람들에게 졸업장은 '어느 정도 수준의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했다'는 일종의 자격 증명으로 쓰인다.

▲이한준(67) 씨 ⓒ서울대학교
그러나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는 이한준(67세) 씨의 졸업장은 그가 두고 두고 꺼내 바라보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일종의 안식처로 쓰일 것 같다.

이한준 씨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지난 1962년. 서울대 중문학과 새내기로 입학해 미래를 향한 꿈에 부풀었었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씩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했던 집안 환경 때문에 등록금을 더 이상 낼 수 없었다. 이 씨는 입학 한 학기 만에 휴학을 선택했다. 그 때만 해도 1년간 돈을 벌어 다시 대학에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 과정만 마친 어린 대학생이 갈 곳은 많지 않았다.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고 1년의 휴학 기간도 어느새 훌쩍 넘어 갔다. 그는 대학 재입학 대신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응시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1965년,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다.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1970년. 경제기획원에 공무원 자격시험을 보고 들어가 5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6년간은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 행정업무를 봤다. 좋은 회사였지만 개인 사업에 대한 욕심이 생겨 1981년, 그 동안 모은 자금으로 유통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때부터 뭔가 확실한 자격으로 일을 시작해야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다시 도전한 것은 법무사 시험이었다. 1990년부터 시험 준비에 들어가 6년 만인 1996년에 당시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가족들에게 이제야 면이 서겠구나." 미안하고 다행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법무사 생활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미처 마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숙제'가 떠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정에 들어섰던 마음도 생각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아들이 갔으면 하는 길에 대해' 남기셨던 유언도 떠올랐다. 이 씨는 2004년 재입학 절차를 밟아 학교로 돌아갔다. 2004년 9월 그는 42년만에 캠퍼스를 밟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종교학도 복수 전공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담담한 듯 말을 이어갔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의 톤이 한결 올라갔다. "제가 졸업을 한다니 아들과 딸이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어서 좋지요, 이미 졸업을 한 62학번 동기들도 함께 와서 축하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시민으로 태어났지만 순탄치 만은 않았던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다. 책 집필을 마친 내년 초쯤에는 신학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다.

"젊은 학생들에 비해 체력도 딸리고 기억력도 좋지 않으니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예전과는 또 다르게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니 제가 얻는 것이 더 많은 걸요."

중문학 전공자 답게 그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한 구절로 앞으로의 계획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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