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단 상품가 랠리, 후유증 심각

유일한 기자, 전예진 기자 | 2008.02.25 13:33
월가의 대형은행 경영자들과 중앙은행의 정책결정자는 요즘 세계 경제 예측을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비해야하는 중앙은행과 경기침체 속에서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야하는 경영자들은 요즘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자고 일어나면 어떤 돌발 악재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손을 잡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당장 이번주에는 세계 2위 채권 보증업체인 암박이 30억달러 정도로 예상되는 자금조달에 성공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연속인 것이다.

이 가운데 두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투자자들이 있으니, 바로 상품 트레이더들이다. 지난 20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01.32 달러로 신기록을 세웠다. 콩과 플래티늄은 2주 전에 이미 기록적인 가격에 도달했다. 브라질 채굴 회사인 발레는 철강 제조업자가 올해 철광석 가격의 71%를 더 지불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상품 트레이더들은 '요즘만 같아라'하며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있다.

◇깨진 수급..공급을 막는 대외 악재들 꼬리 물어
미국이 심각한 경기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상품 가격은 예상밖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수요와 공급이 왜곡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몇 년간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지만 공급을 막는 시장 안팎의 소식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야하는데 이를 막는 변수들이 '항상' 존재한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시장 가격 결정의 기본이 되는 수급 구도가 깨졌다며 이에 따라 상품 가격 상승이 쉼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몇몇 대규모 제련소의 문을 닫게 한 남아프리카 전기 부족은 플래니튬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일조했다. 케냐의 정치적 격변은 차 가격을 더 상승시켰다. 나이지리아의 송유관 누출 사고, 엑슨 모빌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싸움도 최근 석유 가격 상승에도 한몫했다.

자원 채굴회사는 생산량 증가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새로운 탄광이나 석유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필요하고 △노동과 장비의 부족 때문에 채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며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정부가 로열티를 인상하거나 자원을 몰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현재 구리의 가격이 5년 전보다 5배나 오르고, 비축량은 사흘치 수요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 구리 생산량이 겨우 2%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론상 농지경영자는 다른 작물로 쉽게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나 밀, 옥수수, 콩 가격은 항상 떨어질 줄 모르고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밀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곡물을 포기할 경우 동시에 지불해야하는 기회비용도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농부의 변신이 어느 때보다 굼뜰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서 개간 중인 경작지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소요되는 기반시설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중국 인도의 고성장으로 미국 침체 영향 제한적

경기침체라는 우울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수요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다. 수요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 예로 골드만 삭스는 미국의 석유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지만 중국과 인도 같은 지속적인 성장으로 지구 전체의 수요는 크게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 국가의 감시견 역할을 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여전히 세계의 석유 소비가 올해 1.9% 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골드만 삭스의 제프리 커리은 "물가 상승과 신용 경색에 따라 공급자들은 한층 공급을 자제할 것"이라며 "원자재를 가공하는 회사의 비축량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농무부는 세계적인 밀 수요가 올해도 계속해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것은 미국의 밀 비축량을 194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유동성, 상품 투기로 몰려..후유증 걱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침체 속에서 결국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 몇 달동안 공급에 대한 전망은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다. 수요가 줄고 공급이 탄탄한 상황에서 상품 가격이 급등하는 괴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최근의 최고가 랠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과잉 유동성이 투기적으로 상품시장에 유입된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인 추가상승을 겨냥해 트레이더들이 베팅에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상품시장 주변의 유동성은 풍부하다. 연준(FRB)의 금리인하로 불어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갈 곳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상당수 투자자들은 지난해 높은 수익을 낸 상품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의 수혜를 역설적으로 상품시장이 톡톡히 입고 있는 셈.

씨티그룹은 이와관련 최근 유가 급등은 펀드 자금의 급격한 유입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했다. 롬바드 스트리트 연구소는 '철강 버블'이라고 표현했다.

일부에서는 상품 가격 급등에 따른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당장 미국의 경기부양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적인 물가 급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4.3% 올랐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CPI는 2.5% 올랐다. 이는 연방준비은행(FRB)이 권고한 안정적 수준보다 높은 것이다.

씨티그룹은 "하나의 버블이 터지면 종종 다음의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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