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R' 다음은 'S'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 2008.02.22 08:35
리세션(Recession, 침체) 다음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침체 속 물가상승)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미국 경기가 침체에 그치지 않고 경기침체 중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인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

미국의 경기가 침체에 빠졌는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미국 경제의 침체여부는 미국경제학회가 최종 판단한다. 그러나 그 판단이 약 1년 이후에 나오기 때문에 지금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는지의 여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 지표는 명확하게 경기침체를 가리키고 있다. 침체의 사전적 정의는 2분기 연속 경기가 급속하게 후퇴하거나, 성장률이 1% 미만일 때를 이른다. 지난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6%에 그쳤다. 미국 경기는 ‘사실상’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경기가 침체에 그치지 않고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제 성장 전망을 하향하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상향했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가 1.3~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낮춰 잡은 것이다. 이에 비해 물가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은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물가가 당초 전망보다 0.3%포인트 높은 2.0~2.2%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의 판단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공개된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6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채권황제 빌 그로스는 기다렸다는 듯 “연준이 더 이상 금리를 인하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날 달러는 강세를 보였고, 아시아증시는 달러 강세 덕에 수출주를 중심으로 급등했다. 시장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화두는 서브프라임에서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산물발 인플레이션)으로 넘어갔다. 사실 이날 유럽의 주요은행들이 대규모 상각을 단행하는 등 서브프라임 위기가 드디어 유럽에도 본격 상륙했다. 그러나 이 같은 뉴스는 뉴스 취급도 받지 못했다. 대신 애그플레이션이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유가가 종가기준으로 사상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했고, 밀 값은 올 들어서만 90% 폭등했다.

가장 큰 수요처인 미국의 경기가 사실상 침체에 빠졌음에도 상품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투기세력과 친디아의 고성장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값과 주식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되자 투기세력들은 증시에서 빠져나와 상품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당초 투기세력들은 유가가 100달러를 찍자 상품시장에서 이익을 실현하고 빠졌었다. 그러나 증시 하락이 생각보다 장기화되자 다시 상품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향으로 집값과 주가 이외에 모든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친디아의 견조한 수요도 한몫하고 있다. 석유의 경우, 미국이 사실상 경기 침체에 빠졌지만 친디아를 비롯한 개도국의 수요는 여전하다. 리먼브러더스에 따르면 올해 하루 원유 소비량은 지난해보다 14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개도국 기여분이 100만 배럴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사실상 침체에 빠졌으나 친디아는 고속성장을 이어감에 따라 상품가격이 급등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두고 상품시장에서도 ‘팍스 아메리카나’가 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옛날에는 상품가격을 미국이 결정했지만 지금은 친디아 등 개도국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1일 유럽연합(EU)은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한 반면 인플레이션 예상치는 상향했다. EU는 올해 유로존 15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제시했던 2.2%에서 1.8%로 내렸다. 이와 함께 인플레이션 예상치는 당초 2.1%에서 2.6%로,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고치로 상향했다.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일 뿐이다. 아직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미국의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3%, 실업률은 5% 내외이다. 70년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을 때, 소비자 물가는 15% 급등했고, 실업률은 9%에 육박했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 제한을 가져와 경기회복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면 세계경제의 불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70년대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자 물가는 잡혔지만 금리인상은 미국 경제를 극심한 침체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했었다.

한국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밀가루 가격 폭등으로 서민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이 100원씩 올랐다. 한국이 서브프라임으로 입는 직접적 피해는 주가하락이다. 돈 있는 사람만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식료품 가격상승은 서민들에게 타격을 입힌다.

이명박 당선인은 최근 "경제성장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생’이 중요하다"며 연 7% 공약을 슬그머니 내렸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이 당선자가 중시하는 민생마저 파탄 날 지경이다. 안전벨트가 아니라 생명벨트를 매야 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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