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보다 애그플레이션이 더 문제

머니투데이 김병근 기자 | 2008.02.19 13:09
새해 벽두부터 세계 주식시장이 잇따라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온통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신용 뉴스에 쏠려 있었다. 월가는 특히 미국 채권보증업체의 신용등급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는 사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복병이 등장했다. 홍차와 커피 가격이 수급불안 여파로 수십년래 최고로 급등하고 밀과 옥수수 등의 농산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급기야 농산품 가격 상승률이 인플레이션을 웃돌게 됐다.

이에 따라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채권업체들의 신용등급이 아닌 상품 가격 급등을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 보도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1년내 농산품 시장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1년내 농산품 시장에 큰 위기

지난해 미국에서 식품 가격은 전년대비 5% 상승, 17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로 식품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돈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상황이 보다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향후 1년~1.5년 내에 상품 분야의 여러 부문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농산물시장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산물 가격은 지난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 가격은 전년보다 33% 상승했다. 곡물이 41% 뛰었고 옥수수는 무려 62% 급등했다. 대두의 가격 상승폭도 31%에 달했다.

수급불안 여파로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자 식품업체들이 추가 상승을 우려해 사재기를 한데다 투기수요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올 들어 애그플레이션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밀가격이 올들어 90%나 폭등한데 이어 식음료 가격도 일제히 급등하고 있다. 수급불안으로 홍차와 커피 코코아 등 식음료 가격이 일제히 사상최고 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는 것.

최고 품질의 아라비카 커피는 지난주 파운드당 1.6015달러를 기록, 10년래 최고로 뛰었다. 코코아는 24년래 최고인 톤당 2585달러까지 상승했다. 홍차 가격은 최대 수출국 케냐의 정정불안으로 올해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美-중동간 '자원전쟁' 시나리오 대두

농작물 가격이 치솟자 식량 자원화 조짐이 일며 미국과 중동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자원 전쟁에서 중동과 미국의 공수가 바뀌고 있는 것. 원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중동 산유국들이 식량 시장에선 반대로 세계 최대의 농산물 생산국인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특히 농산물 품귀 현상에 시달리는 중동 산유국들이 '식량 안보'를 외치면서 '식량 전쟁'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식량 빈국인 중동 지역은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인도ㆍ파키스탄산 바스마티 쌀 가격은 지난 한 해 동안 51% 상승했다. 식용유는 80% 뛰었다.인도산 양고기는 지난 1년 새 무려 115%나 치솟았다. 닭고기 가격도 66% 올랐다. 카타르의 경우 식품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12월 물가 상승률이 13.74%에 달했다.

UAE 정부는 식품 가격 상승을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판단, 지난해 바스마티 쌀의 상한 가격을 5㎏ 기준 4.90달러로 설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수입업자들이 수입량을 줄이면서 쌀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쌀 가격이 70∼75% 정도 더 오르는 등 식량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우려다. 식량 가격을 잡지 못할 경우 고유가로 이룬 경제 호황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중동에서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중동과 미국 간에 미묘한 '한랭전선'이 흐르고 있다. 세계 곡물 시장을 미국의 메이저들이 잡고 흔드는 데다 미국 달러화 약세가 중동 산유국의 물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시키는 달러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약달러는 고스란히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해수를 농업용수로 바꿔 사막에서 밀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충분한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 유전에 투자하듯 안정적인 곡물 공급을 위해선 미국 농장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달러 페그제 포기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과 6월 쿠웨이트와 시리아가 각각 페그제를 폐기한 데 이어 UAE도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 연료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FT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막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미국이 대체 에너지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세계 경제의 효율성 측면에선 낭비"라며 "이 같은 자원배분 왜곡 현상이 세계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자원 전쟁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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