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손의 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 하버드대 연구교수 | 2008.02.20 10:06

[쿨머니칼럼]시장 기반을 만드는 공공영역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 가면 거대한 공원을 쉽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대도시의 숲에 거대한 공원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장소에 아파트를 짓는다면 얼마나 큰 돈이 될 것인가를 계산해 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서구는 동양에 비해 개인주의적 풍토가 강하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른 개인을 인정하고 공공영역을 존중하는 위에서 개인주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값이 엄청나게 비싼 대도시의 한가운데 거대한 공원이 가꾸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사상 속에는 공(公)개념이 강하게 녹아 있다. 일제강점기 다양한 이념을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이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책 속에는 항상 주요산업의 국유화와 토지의 합리적 재분배가 공약수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점차 쇠퇴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세계는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과 민간기업울 경제운용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경제정책을 지배했던 케인즈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더 이상 '보이는 손' 즉 정부의 역할은 필요치 않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골간은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민간기업의 활동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 인수위는 의료보험을 비롯한 공공부문이 담당하고 있는 부문을 민영화하겠다는 계획도 내 놓았다. 큰 틀에서 볼 때 지난 세기 일본 고이즈미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 완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움직이는 개인과 기업들이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공(公, public)을 인정하지 않고 이기주의와 결합하는 자본의 무정부성은 결국 경제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멀게는 1929년의 대공황이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했으며, 가깝게는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이 뉴딜에 의해 해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여파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재난을 가져왔다.

한국은 1997년의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성공적으로 극복한 국가라고 하지만,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재벌 구조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시장논리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면, 한국은 또 다른 경제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이 공공의 재산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개인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한 SK, 현대자동차, 삼성, 한화 등 대표적인 재벌그룹과 관련된 사건들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뇌물, 폭행 스캔들은 모두 재벌2세가 관련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의 개인주의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에서 오히려 이기주의적 기업문화가 꽃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영역과 공정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세계는 무정부주의적인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는 세계화의 전도사이면서 스스로 그 한계를 인정한 세계은행의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논의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공영역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규율은 규제가 아니다. 이것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지난 세기, '역사의 종언'을 선포했던 후쿠야마는 최근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공산권의 붕괴로 시장의 우월성이 입증되었지만, 이것이 곧 무정부적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지역인 뉴욕 맨해튼에는 금융자본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와 센트럴파크가 공존하고 있다. 3.4㎢ 면적의 이 공원은 도시공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시장과 공공영역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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