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자살시도, 조건無 천만원 날 살렸다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8.02.21 10:52

[쿨머니, 기적을 일으키는 돈]<1-1>마이크로크레디트로 새삶 얻은 문광석씨

1989년, 그의 나이 26세. 그는 중장비 기사였다. 돈 벌어 가난을 떨치러 괌에 갔다. 간지 사흘만에 말라리아로 쓰러졌다. 약이 없었다. 빈손으로 귀국한지 3개월 후, 눈이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망막 황반변성'이라고 말했다.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31세. 광명3거리 육교 위에 섰다. 텅빈 가슴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심코 뛰어내렸다. 이름 모를 행인이 그를 병원에 싣고 갔다. 무릎뼈엔 금이 갔지만 그의 삶은 이어졌다.

3개월 후, 그는 살던 집 처마 밑에 대못을 박았다. 목을 맸다. 이제 끝이다 싶었던 그 순간, 대못이 떨어졌다. 수면제 40알을 삼켰다. 이틀 동안 의식 없이 잤다. 형이 왔다. 그는 병원에서 다시 눈을 떴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두 눈을.

↑문광석 광혜안마 대표
ⓒ이경숙 기자
문광석(45) 광혜안마 대표가 주인공인 이 기사는, 해피엔딩이다. 그는 지금 경기도 광명시에서 10여평짜리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다. 7년 경력 그의 별명은 '약손'. 그가 출근할 때마다 아내 신혜경(45)씨는 그의 '약손'에 손을 얹고 노래한다.

"백마를 타고 백리천리를 달려오세요. 아아아, 아아아, 그대는 진짜 내사랑."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새 길, 새 삶을 찾은 이는 560여개 업체, 1000여명. 그 중에서도 문 대표는 남다른 이로 꼽힌다.

사회연대은행은 소외층에게 무담보 소액대출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다. 이 곳은 창업을 통해 소외층이 스스로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한다.

그래서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은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지원 받은 사실을 주변에 알리길 꺼린다. 언론인터뷰도 피한다. 자신이 사회소외층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알리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이리라.

문 대표는 달랐다. 사회연대은행의 창업 지원을 받은 2005년 이후, 그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선선히 응했다.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도사가 따로 없다.

지난해 그는 안마원 연 매출의 1%를 사회연대은행에 기부했다. 또 사회연대은행 '희망의 징검다리' 프로젝트에 동참해 인근 장애우, 여성가장에게 척추교정이나 침 시술을 제공했다.

사회복지사의 꿈도 키우도 있다. 그는 6주째 주3일씩 서울시 충무로의 사회연대은행 사무실에 나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카톨릭대학 평생교육원 실습과정이다. 그는 내년 2월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에게 가는 길을 물었다.

"7호선 온수 방향 지하철을 타고 광명4거리 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세요. 나와서 진행방향으로 쭉 걷다가 두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오시면 광혜안마 간판이 보이실 겁니다. 골목길 앞에 도장집이 있어요."

광혜안마 찾기는 쉬웠다. 아니, 그가 가기 쉽게 설명해줬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앞이 보이는 사람에게 그토록 길을 잘 알려주다니.

그의 삶은 절망으로 길 잃은 이들에게 살 길을 알려준다. 그는 11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곧이어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그는 아버지와 형이 일하는 건설 현장에서 잔심부름을 시작했다.

어른이 된 그는 중장비 운전면허를 따 굴삭기를 굴리기 시작했다. 1988년 건설시장 불황으로 다니던 회사가 망해 다음해 괌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꿈은 '아버지께 대궐 같은 집을 지어 드리는 것'이었다. 시력을 잃고 운전대를 놓은 후, 그는 꿈을 잃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절망한 문광석을 만나면 뭐라고 격려하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질문의 뜻을 거듭 확인하다가 그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자기자신에게서 빠져나와라, 자기자신을 인정해라, 인정해야만 지금 갇힌 그 틀(족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어려운 시점에 있을 땐 그걸 몰라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거든요."

그는 '절망을 할 땐 먼저 그러한 자기자신을 인정하고 수긍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먼 미래를 꿈 꾸기만 하지 그것을 실현하는 단계를 생각하지 못해요. 꿈을 잃었다면, 실의했다면 생명을 버리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음 단계가 정말 없는지."

수없이 자살에 실패한 후 그는 '신경질이 나서' 죽기를 포기했다.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맘 먹고 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어느 날, 동네 교회 권사가 장애인교구를 소개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보다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 사람들은 밝았다. 전도사, 안마사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 대표는 지난해부터 '희망의 징검다리'
프로젝트에 참가해 광명시 장애우, 소외층에
척추교정, 침 시술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1998년, 그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자신을 시각장애 1급으로 등록했다. 대한안마사협회 부설 안마수련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맹인학교 3년 과정 후 '이료전문학사' 자격도 땄다.

2002년 5월 25일, 그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중학교 3학년 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시력을 잃었다. 오랜 투병의 여파로 한쪽 다리가 짧다.

"서로 이해하니까 크게 싸울 일이 없어요. 아내는 저보다 많이 아파요. 안쓰러워요. 그냥 어머니랑 살았으면 편했을텐데,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차 타고 여행도 다녔을텐데, 싶어서 불쌍해요. 그게 늘 맘에 걸려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하지만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큰 사랑을 어찌 숨기랴. 아내 신혜경씨는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복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았다.

묘하게도 3년 후인 2005년 5월 25일에도 그에겐 복된 일이 일어났다. 광혜안마를 개원한 것이다. 개원 결심 후 6개월 이상 자금을 빌리지 못해 고생하던 그에게 사회연대은행은 연 2%의 이자로 1000만원을 대출해줬다. 경영 컨설팅도 제공했다.

올해 5월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는 광명시청 옆 30평짜리 공간으로 안마원을 확장이전할 계획이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꿈을 키울 작정이다. 장애우들을 위해 '4대 보험 되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의 삶은 '동사'로 느껴진다. 살기를 멈춘 순간이 그에겐 죽음이었다. 살기로 한 순간, 새로운 삶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다시 삶을 찾은 사람들이 지난주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다. 책 제목은 '무지개가게(갤리온 펴냄)'. 사회연대은행이 창업을 지원한 업체에 붙여주는 이름이다.

문 대표 등 20명 창업자의 진솔한 인생담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정가의 10%는 사회연대은행 무지개가게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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