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빚잔치는 끝났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2008.02.24 10:40

[머니위크 칼럼]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은 사업을 하다 망했을 때 나름대로의 의식이 있었다. "나는 망했다"고 외치면서 자신이 쓰던 탁자를 부수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처럼 망했다는 소문이 돌면 채권자들이 몰려가서 가재도구를 때려 부수는 것도 다반사였다.

영어로 파산을 의미하는 bankrupcy는 바로 이런 의식들에서 비롯됐다. 이 말의 어원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bancarotta는 ‘깨어진 상인의 탁자’를 뜻한다. 파산이라는 말에 굳이 깨어질 파(破)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파산은 순 우리말인 빚잔치를 연상시킨다. 원래 이 말은 채권자들이 망한 사람의 집에 몰려가 가재도구 같은 것들을 챙기는 것을 뜻한다. 파산의 어원 그대로다. 여기다 빚잔치에는 파산의 어원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이 파산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고리대금업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베니스의 상인>이 보여주듯 당시 고리대금업자들은 쉽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가혹한 방법으로 돌려받았다. 따라서 이들 무서운 줄 모르고 빚을 얻어 잔치를 벌였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파산으로 내몰렸다.

지금 세계는 빚잔치와 파산의 연쇄 폭발을 경험하고 있다. 쉽게 돈 빌리는 재미에 들렸던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들이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집값이 뛴다고 믿었던 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리해서 돈을 빌려 집을 샀다.

그런데 집값이 예기치 않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빚 이자까지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처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과 이들의 채권을 근거로 해서 만든 파생 금융상품을 사들인 금융기관들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겁 없이 마구 빌려 썼던 자동차 할부금융(오토론)이나 신용카드에서도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일련의 금융불안과 경기침체 우려 모두가 빚잔치에서 비롯됐다.

미국 정부 역시 개인과 비슷한 처지다. 부시 행정부 이후 재정 적자가 급격히 늘어나 사상 최악의 수준이 됐다. 물론 세계의 기축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 정부는 개인처럼 빚잔치나 파산의 가능성이 없다. 대신 달러 가치가 사상 최저로 떨어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의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만은 없다. 조만간 우리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황이 우리한테 악영향을 미치는 것만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진짜 걱정거리는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도 3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빚으로 잔치를 벌였다.

특히 2006년 급증했던 주택담보대출은 현재 잔액이 222조원에 달한다. 집값은 최근 1~2년간 거의 뛰지 않았고 이자 부담은 크게 늘었다. 우리의 경우 미국과 같은 문제가 당장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이른바 거치 기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보통 3년까지는 이자만 갚다가 그 후부터 원리금을 변제한다. 그런데 급등했던 주택담보대출의 거치 기간이 서서히 마무리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당신의 소중한 탁자를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력이 있을 때마다 눈 딱 감고 빚부터 갚아 나가라. 일종의 빚 다이어트(Debt Diet)에 나서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빚을 얻어 재테크를 하던 지난 몇 년간의 나쁜 습성부터 버려야 한다. 빚잔치와 파산의 시대를 견디려면 우선 몸부터 바짝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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