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 편지가 남긴 미묘한 여운

박종진 기자 | 2008.02.13 11:52

"신뢰성 없다" vs "한국사회 희생양" 동정론도

숭례문 방화사건 피의자 채모(70)씨가 남긴 편지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채씨는 편지에서 자신이 소유하던 일산 땅을 강제로 헐값 수용당한데 대한 분노를 적고 있다. 그는 또 2006년 '창경궁 문정전 방화사건'의 진범이 아닌데도 사법기관에 의해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모씨가 쓴 편지
국보 1호를 불태운 방화범, 반 정신병자의 편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편지가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약자들의 하소연같다는 동정론도 제기되고 있다.

채씨는 방화 사건 두달 전 문제의 편지를 남겼다. 본지가 12일 이 편지를 소개하자 한 포털에서는 댓글이 1000여개 가까이 달렸다.

방화 행위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누리꾼들은 채씨의 편지에 일종의 '공감'을 표시했다.

누리꾼 '수람팔도'(필명)는 "죄는 잘못이지만, 억울한 일 안당해본 사람은 모른다"며 채씨에게 동정을 보냈다. '공자가라사대'는 "편지 내용이 상당히 진솔해 보인다"며 피의자에게 신뢰를 나타냈다.

나아가 '자미화'라는 누리꾼은 "일산 XX지구에 나도 시세보다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토개공에게 땅을 뺏겨 남편이 몇년을 불면증에 시달렸다"며 피의자가 밝힌 토지보상문제에 적극 공감했다.

심지어 범인 조작설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들도 있다. 'Obi-Wan'은 "큰 사고를 속히 무마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은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외에도 형평성 없는 법조인들을 비난하는 '사법 불신형', 힘없는 국민들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형'의 댓글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피의자 채씨의 잘못을 질책하는 댓글도 많았다.

'행운아'는 "아무리 억울해도 국보를 태운 것은 참으로 잘못됐다"며 비판했다. '미야비입술'은 "영감 억울한 걸 왜 숭례문에다 풀었냐"면서 동정론을 일축했다.

물론 편지 자체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댓글도 많았다. '열심히'는 "용의자의 편지를 어떻게 믿냐"고 잘라 표현했다.

현재까지의 수사상황을 볼 때 일부 누리꾼들이 제기하는 진범 여부에 대한 의혹은 단지 '의혹'에 그칠 공산이 크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피의자의 인상착의가 부합하는 점 △경찰이 피의자 주변에서 찾아낸 증거물이 사건 정황과 들어맞는다는 점 △피의자 아들이 부친의 범행 자백 사실을 증언했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많은 누리꾼들이 채씨에게 동정을 보내는 현실에는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된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짙게 묻어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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