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이 가장 마지막에 할일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 2008.02.04 12:17

[박종면칼럼]현대미술은 돈, 국보급 작품이 '장물'로 간주된다면…

최근 위작논란을 빚은 '빨래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박수근, 그는 생전에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꾸려나갔고 두 아들을 병으로 잃지요.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평생 가난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발작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을 오갔고,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하지요.
 
우리는 예술가라고 하면 흔히 이런 불운과 가난을 떠올립니다. 아울러 가난과 비운을 감내하며 살아간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술이 돈을 밝히면 예술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예술지상주의적 가치관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메디치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 중앙의 비너스는
메디치가 실력자의 애인이다.
과연 그럴까요. 예술계의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을 아시지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비너스는 당시 메디치 가문 실력자인 줄리아노의 정부(情婦)입니다. 정부의 그림을 그렸다면 보티첼리는 메디치가로부터 엄청난 후원을 받은 게 틀림 없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보티첼리뿐이 아닙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들이 모두 메디치가로부터 후원을 받았습니다.
 
근현대로 오면 재력을 갖춘 후원자, 화상, 컬렉터의 역할은 더 결정적이게 됩니다. 폴 뒤랑 뤼엘이라는 화상은 모네, 르누아르, 드가와 같은 인상파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하고 그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줬습니다.
 
독일태생의 은행가 출신 화상 앙리 칸바일러는 모든 사람들이 피카소를 비판할 때 그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나서는 등 입체파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여자 카사노바 구겐하임과 잭슨 폴록의 만남
 
현대미술의 컬렉터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페기 구겐하임입니다. 막스 에른스트, 마르셀 뒤샹 등 숱한 남자 예술가들과의 염문으로 여자 카사노바라는 욕을 얻어먹지만 그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000만 달러의 유산을 미술품 구입과 화가들에 대한 지원에 씁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과의 만남은 현대미술계의 전설이 됩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집과 작품들을 모두 삼촌이 설립한 구겐하임 재단에 기증합니다.

현대미술의 중심지는 단연 미국 뉴욕입니다. 뉴욕의 현대미술을 끌어가는 기관차는 미술의 보물창고 근현대미술관(MoMA)입니다. 모마는 세 명의 여성 컬렉터 에비 록펠러, 메리 퀸 설리반, 릴리 블리스에 의해 세워졌는데 그 중에서도 석유재벌 존 록펠러의 부인 에비 록펠러의 역할이 제일 컸습니다. 더욱이 지난 2005년 에비 록펠러의 아들 데이비드 록펠러는 자기가 죽으면 1억달러를 모마에 기증하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영국출신의 찰스 사치는 현대 미술계의 슈퍼 컬렉터로 꼽힙니다.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출신의 젊은 작가그룹(yBa)을 발굴했습니다. 슈퍼 컬렉터 찰스 사치가 어느 작품에 투자 하느냐에 따라 미술시장에서 해당 작가의 작품 가격이 출렁입니다.
 
#모마의 에비 록펠러와 리움의 홍라희
 
한국에서 메디치가나 페기 구겐하임, 에비 록펠러, 찰스 사치와 같은 컬렉터를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요. 삼성과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정도가 아닐까요.
 

삼성의 컬렉션 규모는 1만50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국립중앙박물관을 빼면 단연 최고, 최대입니다. 선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모은 고미술에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홍라희 관장이 미니멀 아트나 팝 아트 계열의 미술품까지 적극 수집함으로써 삼성의 컬렉션은 양과 다양함에서 그야말로 국보급입니다.
 
지금 삼성의 국보급 미술품이 수난을 맞고 있습니다. 비자금으로 100억원대에 이르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같은 미술품을 사 모았다는 주장에 따라 삼성 특검팀은 용인 에버랜드의 수장고까지 압수수색 했습니다.
 
#국보급 미술품이 '장물'로 간주되는 현실
 
국보급의 미술품이 수천 점 보관돼 있는 만큼 그 소재가 공개되지 말았어야 할 비밀 수장고가 이렇게 TV로 생중계될 필요까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문제의 '행복한 눈물'이 다른 곳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드러난 지금 와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삼성 특검팀의 한건주의가 빗어낸 코미디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이 갖고 있는 1만5000여점의 국보급 작품들이 모두 '장물'로 간주되는 현실입니다.
 
예술품은 본질적으로 실소유주가 누구든 공동체의 공동 자산입니다. 한국에 있는 작품이라면 결국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행복한 눈물'이든 '베들레헴 병원'이든 그 그림을 보고 즐기는 건 결국 대한민국 사람 모두니까요.
 
#중국미술 붐 주도하는 중국정부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흐의 그림 '가세박사의 초상'이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가격인 8250만 달러에 팔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산 일본의 제지회사 사장을 비난했습니다. 그 때 제지회사 사장은 말했습니다. "지금 이 그림을 사지 않는다면 일본은 두 번 다시 이런 그림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요
 
요즘 세계 미술 시장에서의 화제는 단연 중국 현대미술 붐입니다. 일부에서는 쟝샤오강 위에민준 같은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엔디 워홀과 같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들을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내 놓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중국미술 붐이 중국정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마치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을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팝아트 등 자국 미술을 미국의 이데올로기 홍보 전략에 이용한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돈 그 자체
 
↑ 앤디워홀의 '달러표시', 돈은 미술속에 미술은
돈속에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비자금으로 미술작품을 구입해도 좋다는 건 아니지만 현대 미술시장은 이미 천문학적인 자금을 마련하지 않고는 노크조차 해 볼 수 없게 돼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재벌기업이나 재벌가 안주인들이 미술품을 사 모으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설령 재테크용이고 상속용이라해도 사시의 눈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을 우리들이 그래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건 모두 이들 덕분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돈에 대해 가장 솔직하고 가장 당당했던 화가 앤디 워홀은 "돈을 버는 게 아트"라고 했지만 현대미술은 돈 그 자체입니다. 미술품의 영역까지 조사하고 뒤지는 일이 법 논리상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삼성 특검이 가장 마지막에, 가장 조용하게 할 일이라는 점을 감히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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