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의 EB 투자자들 '전술에 말렸다'

더벨 현상경 기자, 황은재 기자 | 2008.01.31 13:15

[대한통운 M&A/인수금융]② 유동화도 어렵고 수익률 조건은 '운'이 절반

이 기사는 01월31일(11:0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금호 입장에서 EB는 손쉽게, 그리고 당장의 현금 부담을 최소로 해 자금을 조달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됐다.

우선 현재 10만원 안팎인 주가가 3년뒤 17만원을 훌쩍 넘어서지 않고서야 투자자들이 주식교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1년뒤 유상감자로 주가가 크게 오른다고 해도 10% 이상의 수익률(1000억원 투자기준)이 나오려면 주가가 19만원 가까이 올라야 한다.

달리 말해 금호로서는 5년동안은 표면이율 2%만 지불하면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셈. 5년뒤 자금사정이 좋아지만 만기보장수익률을 제공하고 리파이낸싱을 통해 자금을 회전시킬 수 있다.

반면 이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들은 '어쩌다보니 금호만 도와주게 된 꼴'이라는 심정을 표현한다. 교환가액이 높다보니 주식교환을 통한 '대박'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3년뒤 주식교환을 통한 수익확보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금호측에 교환가액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금호의 강경한 반대에 손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호로서는 인수금융에 필요한 돈의 배에 가까운 투자금액을 모았으니 굳이 투자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대한통운 인수가 가시화되기 전부터 금호가 서둘러 투자제안을 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투자조건이나 금액등은 추후 협상하기로 하고 참여약속만 밝혔다"며 "이때 맺은 약정이 투자자들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됐다"고 풀이했다.

결국 표면상으로는 EB지만 실체는 은행 이외의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주식담보대출이나 마찬가지 형태가 된 것.


유동화도 쉽지 않다. 이미 대우건설 인수 이후 상당수 금융회사들이 기존 금호그룹 관련 투자한도를 소진한 탓에 추가적으로 펀드나 채권 등으로 유동화를 통한 추가투자자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무적투자자들의 투자자금이 대우건설 당시 대부분 3000억원을 훌쩍 넘겼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소규모로 그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단 투자약정을 맺었으니 철회하기는 애매하고 결국 소액만 집어넣은 것"이라며 "따지고보면 거의 예의상 투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대한통운 EB 인수를 고려했던 일부 증권사들도 결국 이런 투자한도 때문에 검토를 중단했다.

시장금리도 금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올들어 금리가 갑자기 급락하면서 금호가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만기수익률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조건'이 돼버렸다.

작년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자금경색과 금리상승 추세가 한창일 당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의 금리는 제공받아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금호측은 역시 투자자들이 충분하다며 이를 한사코 수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확정된 금리가 9~9.5%였고 투자자들 대부분은 이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지금 재무적투자자들은 대우건설 사모사채 등의 수익률이 7%대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금호 EB의 만기수익률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다보니 "금호는 정말 운이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탓에 금융업계는 이번 금호의 EB발행 기법이 사실상 마지막 대형 인수합병 딜을 놓고 기관들의 투자를 한도까지 짜내 돈을 모집한 것으로 평가한다. 외형만 놓고 보자면 금호도, 투자기관들도 윈-윈하는 구조가 마련됐지만 실상을 보자면 금호의 전술에 휘말렸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금호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도 투자자들을 줄세워 좋은 조건을 획득하는 노하우(?)를 선보여왔다"며 "이런 경험들이 이번 인수금융에도 적극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속내를 표현하고 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4. 4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
  5. 5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